다섯 살 즈음이었을 거다.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동네 문방구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곳이었다. 도무지 눈을 떼려야 땔 수 없이 신기한 장난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오브제로 가득한 마성의 공간.
나는 그중에서도 문방구 쇼윈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던 '주방놀이세트'를 보고 그만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나는 엄마에게 몇 번이고 주방놀이세트를 사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당시 우리 집은 투병 중이었던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가세가 기울어 있었던지라 당시로선 꽤 고가였던 그 장난감을 사줄 여력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철부지인 동시에 집념의 한국인이었던 나는 꾸준히 졸라댔고 어른들은 그때마다 추석에 사 줄게, 크리스마스에 사 줄게, 설에 사 줄게라는 말로 사실상 '저건 도저히 못 사준다'는 거절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매번 둘러대던 '다음에 사 줄게'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싶었으나 매번 배반당한 나의 동심은 최초로 T적 성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왜 어른들은 저한테 한 약속을 안 지켜요?"
징징거리거나 울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정색하며 얘기했다.
혼날 각오를 하고 얘기한 것이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이야기가 먹히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이거는 너무 비싸서 몬 사주고 다른 걸로 니 함 골라 볼래?"
딜이 들어온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집은 비싼 장난감을 사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이건 현실이다. 계속 사고 싶은 걸 고집하면 다른 걸 가질 수 있는 기회마저 날아 갈지 모른다..... 오케이 꿩대신 닭! ' (뭐 이런 류의 생각이었는데 나이가 먹은 만큼 당시의 생각을 조금 어른스럽게 정리해 보았다.)
나는 결국 고심고심해서 주방놀이세트 가격의 5분의 1쯤 되는 다른 장난감을 골랐다. 참으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사고 싶은 걸 사지 못했으니 아쉬웠지만 결국 뭐든 얻어내었으니 다행이었고 이제 앞으로는 무언가를 사달라고 때를 쓰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밀려왔다. 그때부터였는지 정확히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로 꿈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는 상황이 오면 난 언제나 최선을 고르기보다 차선을 고른다. 그러다가 잠에서 깬다. 그런 꿈을 꾸면 언제나 찝찝하다. 하지만 그때의 선택을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지만 솔직하게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고 처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들이 진작에 형편이 안 좋아 비싼 장난감을 사주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먼저 말해 주었더라면 더 이상 조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회에서 어린이 팀 교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진짜 힘든데 진짜 행복한 양가의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아이들은 정직하다 자신의 감정을 꾸며낼 줄 모른다. 한편으로 아이들은 솔직하진 못하다. 최대한 자신이 유리한쪽으로 말하려고 애쓴다. 전자의 경우는 보통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들이다. 좋고 싫은 것에 대하여 좋은데 싫은 척, 싫은데 좋은 척을 못한다. 후자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본능처럼 나온다. 그것은 일종의 생존을 위한 약자들의 몸부림 같다. 그래서 측은하고 어떨 땐 귀여울 때도 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
흔히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표현을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모방한다 하여 생겨난 말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어린이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들의 지금 모습을 통해 나의 어릴 적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통로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 통로로 나는 종종 내 어릴 적 모습을 반추하고 객관적으로 통찰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치유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종의 거울 치료.
결론적으로 아이들은 어른을 성장하게 해주는 좋은 선생님이다. 절대로 어린아이들을 어린것들로 깔보면 안 된다. 그럼 어디선가 그 옛날의 나보다 더한 따박따박할 말 다하는 매콤한 어린이가 나타나 따끔한 한마디로 나를 부끄럽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