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롤러코스터

초상집을 생각하라.

by 수키니피그

히읶~끼읶 히읶~끼읶 꺼읶꺼읶 뽂.뽂.뽂


딱히 가정에 목메어 있을 필요가 없는 중년의 행운아인 나는. 시간이 날 때 요즘 핫하다는 스폿을 찾는다. 소위 '맛집'이라 불리는 곳도 그런 곳에 제법 있는 편이라 맛집을 찾아간다는 구실로 젊다 못해 어린 성인들이 북적거리는 핫플을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홍대인가?(아니 성수인가?)를 지날 때 어디선가 유리창 닦는 소리가 났다.

히읶~끼읶 히읶~끼읶 꺼읶꺼읶 뽂.뽁.뽂.

'참 쇼윈도 청소를 야무지게도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다른 골목을 지날 때 어디선가 또 들려왔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그 알 수 없는 의성어는 유리창을 닦는 소리가 아니라. 이름도 이유도 뭣도 알 수 없지만 젊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한 소녀가 숨이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 소리라는 것을. 그리고 어김없이 그 소녀의 곁엔 엇비슷한 웃음소리로 동기화된 그녀의 친구가 맞장구치듯 같이 웃고 있었다. 폭소 이중주! 문득 내가 저렇게 웃던 시절이 언제였나? 갑자기 상념이 몰려왔다.


Dizzy Life


세월이 쏜살같다느니 나이랑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비례한다느니 삶이 찰나와 같다느니 하는 어른들의 말이 진짜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 신기하게도 내가 나를 인지하는 뇌의 영역은 아직 나를 이팔청춘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가시광선 아래에 드러나 보이는 모든 것의 지표는 "너는 이제 성인병의 문턱을 넘고 있는 중년의 아줌마야!"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제 웬만한 일은 크게 놀랍지도 않고 인생이 보여주는 모순에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가 되니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뇌는 위태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다음번에도 그런 일이 닥칠 것을 대비해 위기의 상황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찍어 기억 속에 저장한다.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의 기억이나 위험한 일을 당할 때의 상황은 실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지지만 마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느껴지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상황이 실은 지나 보면 별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의 나의 뇌는 이제 사진을 여러 장 찍을 필요가 없는...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는 갈등과 불안이 상당 부분 종식된 상태라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아 상황을 해결하거나 분석하여 위기에 대비하려고 하기보다 흘러가는 시간에 올라타 불안도 없고 갈등도 없지만 딱히 재미도 없는 삶의 시간들을 연거푸 순삭 해 버리니 세월이 빠르다고 느낄 수밖에... 한마디로 세월, 너 왜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냐?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는 있지만 딱히 스릴은 없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또 새해가 밝았고 설날 연휴의 시작이다. 막상 특별날것도 없다. 해마다 이맘때쯤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 새해 인사를 명분으로 연락하고 만나자고, 밥 한 번 먹자고 인사치레를 하던 것도 이제 옛말이다. 스스로 쓸쓸해 지기를 선택했다.

온갖 영광도 누려보고 시련도 겪어 본 지혜의 왕 솔로몬은 황혼을 맞이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마지막이며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을 자기 마음에 유념할 것이기 때문이라."

생의 마지막을 유념하고 살면 살아가는 동안의 공연한 집착과 헛된 망상을 접고 하루하루를 더 가치 있게 살아 낼 수 있다는 교훈이다.

유리창 닦는 소리처럼 요란스러운 즐거움을 쫓기보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이 '시간'이라는 보물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하면서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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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