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죄가 없다.

"oo 씨 눈빛이 난 참 맘에 들어"

by 수키니피그

"oo 씨 눈빛이 난 참 맘에 들어"

성격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 같았던 직장 상사가 정말 이례적으로 그녀에게 던진 칭찬.... 당시 난 그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듣기 싫었다.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첫 직장에는 말투도 표정도 늘 부드럽고 다정한, 마치 평생 구김살 없이 자란 것만 같은 동갑내기 여자 직원이 있었다. 말할 때는 항상 살짝 웃고 있었고, 작은 일에도 고맙다고 말하던 그녀는 누가 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은 사람이었다. 그 긍정의 에너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언제나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가 괜히 싫었다. 나한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었고, 날 무시하거나 불편하게 대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다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웃을 때면, 마치 나만 혼자 딱딱하고 어두운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저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상냥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 쌓여만 갔다.

한참 고민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자존감이 낮은가 보다.”
그녀는 나보다 밝고, 여유롭고, 자신감 있어 보였고, 나는 늘 긴장하고 방어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 감정이 조금은 설명되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다정함’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게 아닐까.
어린 시절, 나는 다정함과는 조금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다. 감정 표현이 드물었고,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 게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두려워했다.

그렇게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딱딱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그녀의 부드러움은 낯설고, 때론 위협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냥 다정했을 뿐인데, 나는 그 다정함이 나의 차가움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싫었던 걸까?

지금 와서야 말할 수 있다.
그때 그 다정했던 그녀에게 미안했다고.
내가 품었던 작은 질투와 불편함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정함은 죄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가 나에게 다정하게 얘기하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야 할 때 종종 닭살이 돋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따뜻한 말에 감사하고 나의 진심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소중한 가치라는 걸 알기에 연습하고 있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대하는 일,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 그게 얼마나 귀하고 용기 있는 일인지 이제는 알겠다.
그때의 나는 아직 그런 마음을 껴안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색해도, 조금은 서툴러도.
다정함은 죄가 없으니까.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3화나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