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의도
아시다시피 서울 지하철 중 2호선에서 자리에 앉아서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은 어쩜 하늘의 별따기에 버금가는 행운입니다. 신기한 것은 평일 출퇴근 시간이든 주말이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죠. 그런 2호선을 주로 이용하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는 철칙하나가 임산부 배려석엔 절대로 앉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별히 거창하게 공공의 유익을 위한 다기 보다. '임산부배려석은 언제나 비워두자'는 캠페인을 준수하자 정도의 얄팍한 이유지요.
얼마 전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도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출근을 하던 중이었는데 저는 우연찮게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은 비어있었지만 여느 날처럼 '이 자리는 나의 것이 아니다'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손잡이에 체중을 실어 거의 매달리다시피 서서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갔을까?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정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이내 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피곤하시겠지.... 그래도.... 좀 그렇네...'라는 마음이 들어 두 눈을 감고 있어 저와 눈을 마주칠 일이 없는 그 아줌마를 한동안 응시(절대 째려보진 않았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뭐... 애당초 내 자리도 아닌데 누가 앉든... 무슨 상관이랴'하면서 서있는데 어느덧 목적지를 한 정거장 남기고 임산부 배려석 옆옆 자리가 났고 저는 단 한정거장이라도 앉아서 가고 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 얼른 앉았지요. 바로 그때였어요. 분홍색 임산부 벳지를 달고 임산부 배려석 근처에 서 있는 임산부를 본 건.... 저는 재빠르게 아주머니를 쳐다봤고 여전히 아주머니는 눈을 감고 배려석에 앉아 계셨습니다.
'저 임산부는 앉지도 못하고 얼마를 저렇게 서서 왔을까?'를 생각하는데 그 순간 저는 소심한 저의 성격상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옆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의 어깨를 툭 치면서
"저기요! 일어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순간 근처의 모든 시선이 나와 그 아주머니에게 쏠렸다는 걸 알았지만 애써 외면하며 저는 한마디 더 했어요.
"저기 임산부가 계신데요." 아주머니는 실눈을 뜨고 슬쩍 앞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다음에... 다음에 내려"라고 하시고는 다시 눈을 감으셨어요. 어차피 다음 정거장에 내리니 마저 앉아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깨닫고야 말았어요. 제가 아직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을요.
저는 주섬주섬 일어섰습니다. 양보를 위해서요? 아니요. 어느덧 저의 목적지에 다다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내리는 역에서 모두가 내리더군요. 아주머니도 그 임산부님도.... 임산부님은 저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셨고 저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생각에 세상 부끄럽게 맞인사를 하고 사람들의 물결 안에 섞였습니다.
그날의 저는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선한 말과 행동하려고 했다'가 진정한 저의 의도였다면 저는 제가 앉아 있던 자리를 양보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저 임산부배려석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앉아 주변을, 아니 '저'를 불편하게 하는 그 아주머니가 그냥 싫었던 겁니다.
대부분의 위선은 특정한 이익을 위해서 발휘되기도 하지만 나조차 깨닫지 못하는 불손한 의도로 인하여 발현되기도 합니다. 그날 저는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위선을 마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부끄러움 덕분에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