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내고 싶은 인간관계가 있다면 아주 효과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연인이나 부부, 친구 사이가 오래가는 이유는 상대가 싫어하는 것까지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자 우정 아닌가. 한쪽에서만 강요를 할 수는 없고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 좀 안 했으면 좋겠어’를 기억해 뒀다가 실행하면 된다. 참 간단하지 않은가! 물론 좋아하는 걸 기억해 두었다 선물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는 행위는 관계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관계를 오래 지속함에 있어 그 근본은 ‘하지 말란 것 좀 하지 마!’를 실천하는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는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초반에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 더 초점을 맞추고, 더 좋은 선물을 주며 상대의 관심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상대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안 하는 것이야 말로 관계를 0인 상태에서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중심축이다. 마이너스 요인들을 항상 주시하며 좋아하는 것까지 해주면 그 관계는 플러스를 유지하며 안정적이 될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라’라는 속담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마음 다짐이다. 어쩌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유예기간을 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떡 주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떡 하나 주면 올바른 길로 가겠지’라는 희망과 ‘하나 주고 내 마음이 편해지자’라는 포기가 동시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양가감정이 생긴다. 떡 하나로 끝내기까지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고 이미 많은 포기를 했을 것이다.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포기하고 떡 하나까지 주며 달래려 할까. 상대가 참고 떡 하나를 준다면 정말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미묘한 차이를 캐치하여 상대의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빠르게 알아차린다. 더불어 기억력까지 좋다면 다음에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상대에 대한 예절이자 노력이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사이에서는 오히려 긴장하며 노력하려 한다. 하지만 이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함께 있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노력은 점점 잊어져 간다. 익숙해질수록 포기가 빨라진다. 그렇다고 칼 같이 잘라내지도 못하는 이상한 관계가 지속된다.
매번 말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이고 듣는 입장에서도 감정 소모가 크다. 그러면서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등을 진 채로 친히 서로의 골을 파 주며 그 자리에는 눈물과 오해, 미움 등 부정적인 감정들을 채운다.
더 늦기 전에 서로가 마주 봐야 한다. 파 놓았던 골을 채우며, 부정적인 감정들을 걷어내며, 외면하고 싶어도, 아무리 봐도 삽질하는 것 같아도 마주 보며 채워나가야 한다. 그러기 싫다면 어쩔 거야!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더 이상 협상의 의지는 없어 보이므로 결렬이다. 한 명은 버티며 고집부리고 한 명은 거기에 질질 끌려가는 관계야 말로 비정상적이다. 이러한 건강하지 않은 관계는 과감하게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사람은 많다. 내 말 들어줄 사람 하나 없을까.
어린아이에게는 훈육 차원에서 주의를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하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친구가 싫어할 거야. 슬퍼할 거야. 그러면 안 되겠지?’라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인다. 하지만 서른 넘은 어른에게 어린아이 대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야 할까? 나이 먹어서도 안 듣는 걸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 선생님 말씀도 제대로 안 들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거야!‘라는 귀엽지 않은 투정과 고집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래? 나도 두 번은 말하기 싫어. 우리 이제 그만 끝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