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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Aug 20. 2024

이 향기의 끝에 네가 있다

타고나기를 감성적이고 공상적이라 사회생활에서는 이러한 기질을 숨기고 이성적, 근거 중심적 마인드를 유지하려 한다(NF성향이 ST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때론 감각에서 보내는 신호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감각적이라 하면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즉 오감의 민감도가 높다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후각이 제일 예민한 편이다. 특히나 사람의 첫인상에서 상대에게 끌리는 이유 중 후각의 포션이 크다. 향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통계를 내본다면 좋아하는 향에 이끌려 돌아본 시선 끝에는 대부분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물론 향 하나로 그 사람의 인성이나 성격, 취향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첫 물꼬를 틀 수 있게는 해준다.


그 사람에게 다가갈 물꼬말이다. 우선은 상대에게서 나는 향기에 대해 말은 걸어볼 수 있지 않은가.
(이미지출처-그냥그런아기토끼 이모티콘)

나이 대에 맞게 향기의 취향이 달라졌다. 20대 초반에는 어떤 향수를 써야 할지 몰라 가장 대중적인 비누향, 세제향, 성인식 때 선물 받은 플로럴향을 뿌려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음을 티 내곤 했다. 스물이 되면 짠하고 완벽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향이 어떤 향인지 어떤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방황이 계속되며 30대를 맞이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여러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고르자면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취향은 말이야~’부터 시작해서 ‘라떼는~’까지 나올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취향 하나쯤은 가져야 어른 흉내를 내며 어깨를 으쓱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당당하게 좋아하는 향쯤은 말할 수 있는, ‘그래서 이 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야~’로 시작하는 라떼 화법으로 제법 어른인 척 어깨를 넓힐 수 있다. 이 유구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20대의 마지막 아홉수를 진하게 앓고 나서의 마음 상태가 한 몫했다.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으리라. 휩쓸리지 않겠어. 중심을 잡아. 더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중간에 있자’ 이 마인드가 크게 자리 잡았다.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중간의 향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지출처-pinterest)


중성적인 향, 특히 우드향이나 머스크향 그리고 향냄새를 특히나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향을 좋아하게 된 건 어릴 적 조기 교육(?) 덕분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종교인 불교의 영향으로 절에 가는 것이 익숙했다. 그러면서 향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올리는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으면서도 향 냄새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져 내 몸을 둥둥 띄우는 듯했다. 절에 갈 수 없을 땐 절간 냄새라며 나온 인센스 향을 피우면 집에서도 절에 있는 듯 한 무드를 만들었다. 마이너한 향이긴 하지만 종종 이런 절간 냄새를 사람이나 절 외의 장소에서도 만날 수 있다.


걸어가다 찰나에 옆을 스쳐간 사람이 만들어 낸 작은 바람에 익숙한 향이 실려 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며 그 사람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가 하는 궁금증이 바로 뒤이어 오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옷차림은 향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네, 나랑 비슷해! 어떤 이유로 저 향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멀어져 가는 그 사람에게 닿지 않을 여러 질문들을 던졌다. 어떤 날은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코끝을 간지럽히더니 코 안 가득, 기분 좋은 향이 들어왔다. 이 칸에 향기의 근원인(?)이 있다! 점차 가까워지는 향기의 근원인의 곁으로 가서 앉는다. 귀에 꽂은 에어팟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핸드폰으로 귀여운 판다 영상을 보며 코 안에서 살랑살랑 거리는 향을 맡으니 출근길인 것도 잊은 채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코에서 향기가 점차 옅어질 때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 사람이 멀어져 간다. 지하철 문 너머로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아련하게 보며 인사를 보낸다. ‘덕분에 오감 중 과반수 이상이 즐거워한 출근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출처-pinterest)

붙잡을 수 없는 사람, 붙잡을 여력이 없어서 떠나보낸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니 곁에 남은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이젠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해지면서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도 그들을 떠올릴 수 있게 기억하려 한다. 오랜 세월 같이 있다 보니 익숙해져서 혹은 관심이 가는 상대이다 보니 온몸의 감각 세포들까지 마음을 쓰려하는지 저절로 그들의 채취나 즐겨 쓰는 향수가 후각에 자동 입력이 되었다.


향기로 사람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감을 통해 습득된 기억은 각인처럼 오래간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다.


전에 만남을 가졌던 상대와 관련된 향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으려 한다. 상대와의 마무리가 좋지 않게 끝났던 터라 그 향을 맡으면 안 좋은 기억만 떠올라, 자꾸만 미움이 차올라서 그 향기까지 미워졌다. 걸어가다 이 향이 코를 스쳐가면 혹시나 그 상대일까 흠칫 놀라며 두근거렸다(‘어머 너는..?’ 보다는 ‘너 이 자식 어디다 면상을 들이대!’ 쪽에 가깝다).

이 향기의 끝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새로운 사람일 수도, 익숙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나비가 꽃향기에 이끌려 꽃으로 다가가듯 망설임 없이 날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줄, 꽃 같은 사람이 그 끝에 있기를 바란다.
(이미지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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