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들어간 노래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아니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전에 입 안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 구절에서 만큼은 비장해진다. 눈빛을 장착하고 동시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부를 준비를 마친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옷깃만 스쳐도 우린 느낄 수가 있어!”
뇌와 신경을 지배할 정도로 중독적인, 내적 바운스를 외부로 표출시키려 하는 무시무시한 이 노래의 원작자는 대체 누구인가. 무려 1988년도에 나온 노래로 제목은 텔레파시, 가수는 도시아이들. 처음으로 완곡을 들어보니 대략적인 가사의 내용은 ‘말은 안 해도 서로의 기분을 읽을 수가 있어, 눈을 감아도 내 눈 속에서 보이니 외롭지 않아, 길을 가다가 내 생각이 난다면 너를 부르고 있는 텔레파시야’라는 아주 운명적이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였다. 사실 저 정도의 불타오르는 마음을 가진 자의 눈빛이라면 저 멀리서부터 뒤통수가 따갑지 않을까 싶다. 때론 말보다 이러한 눈빛이 주는 힘이 더 클 때가 있다. 말에는 다 담지 못하는 감정들이 눈빛을 통해 상대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신기하게 우리 몸의 방어선에서 거슬리는 말들은 잘 걸러내는데 눈빛에서 오는 진실함은 미처 방어할 틈도 없이 스며든다.
사회에 찌들어가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안광이 없는 눈’ ‘동태눈’이라는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텅 빈 눈을 보이는 순간이 점점 늘어난다. 특히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대부분은 핸드폰을 보느라 눈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딘가를 멍하니 보고 있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아니 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무언가를 보고 있을 에너지조차 없어 초점 잃은 눈은 마치 전원이 꺼진 인형의 눈 같다.
그 사람의 눈을 보면 하루의 고단함이 온전히 느껴져 그 힘듦에 저절로 위로를 보내게 된다. 동시에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를 돌아보며 나 자신에게도 잘 버텨냈음에 어깨 한쪽을 감싸 안아준다.
그리고 아직 남은 나의 에너지가 그에게 조금이나마 가 닿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 당신도 나도 잘 해냈음에 눈빛으로 쓰다듬는다.
직업상 타인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통해 그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저절로 눈빛을 읽어내는 능력이 올라갔다.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면 표정이나 몸짓으로는 숨겨지지 않는, 안쪽 깊숙이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행동과 눈빛이 일치하여 어우러지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아닌 경우가 많아 좀 더 상대의 눈을 더 오래 보려 한다. ‘지금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어쩌다 우리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한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숙해야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며 겪은 수많은 전투 끝에 알게 된 것은 감정을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저절로 터득한 생존 방식이다.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빨리 털어버리는 단순함으로는 험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복잡하고 깊숙히 숨어야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내 안에 불안이 자리하고 있으면 눈빛은 항상 흔들리고 기쁨이 자리 잡고 있으면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걱정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 걱정 어린 눈빛이 나오기 마련이다. 나를 향한 감정이든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이든 상대는 느낄 수 있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때가 더 많다.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들도 많을 테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챘음 하는 감정들도 있다. 그럴 때는 그저 모른 척해주거나 은근하게 챙겨주는 것도 좋다. 오히려 과함은 당황이를 소환하여 눈 가리고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마 그 뒤로는 당신을 만날 때마다 동태눈을 장착한 영혼 없는 AI가 돼 버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