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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Sep 03. 2024

한 걸음 뒤에서 너를 지켜봤어

대놓고 관심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눈앞에서 나에 대한 칭찬을 5분 이상한다? 너무 감사한 상황이지만 온전히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지 않은 터라, 당당하게 칭찬을 누리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만 같아서 손사래를 치며, 아니 온몸을 털어내며 겸손을 떤다. ‘아휴 아니에요’를 내내 외치며 칭찬을 받는 것이 황송한 마냥 상대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모습이 언제부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에게 칭찬 알레르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러다 평생 칭찬을 들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이상한 걱정이 불쑥 찾아왔다.
(이미지출처-pinterest)

칭찬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멘트로는 흔히 엄마 친구들이 하는 ‘아휴 참 예쁘네’와 ‘어머 누가 보면 아직 학생인 줄 알겠어’가 있다.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 정립되어 있었으므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몸이 간질거려 그때마다 온몸을 이상하게 베베 꼬았다. 어느 시점 이후로 나의 외모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이쁜 얼굴은 아닌데, 여기 팔자 주름이랑 기미도 생기고 있잖아. 어휴 나도 늙었다’라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 이후로는 외모에 대한 멘트만 신경 쓰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본심 ‘오랜만이네, oo딸~’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칭찬에는 얼굴에 웃는 가면을 띄우며 ‘어휴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요. 건강을 어떠신가요’로 슬쩍 칭찬 타임을 끝내버린다. 알레르기원이 다가오면 재빠르게 화제를 돌리면 그만이다.

알레르기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력을 높여야 하듯이 칭찬 알레르기에 대한 장벽을 강화시켜야 한다. 칭찬이 다가와도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그 확신이 부족한 상황에서 칭찬이 들어오면 ‘이건 내 것이 아닌데’ 하는 얼떨떨함과 불편함이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을 예로 들자면 내가 생각해도 실수 하나 없이 정말 끝내주게 일을 잘 해냈을 때, 스스로도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때 이런 상황에서 들은 칭찬이야 말로 정말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대놓고 나의 노고를 치하해 주는 것도 좋지만 제일 좋아하는 칭찬은 한 다리 건너 듣는 ‘누가 그러는데 너 좋게 얘기하더라’라는 남의 입을 통해 듣는 칭찬이 더 짜릿하다. 뜻밖의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에 대한 불신이 쌓일 대로 쌓인 터라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면 의심부터 하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다. 좋은 얘기를 할 때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하는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 일 수가 없게 되었다. ‘무슨 의도가 있을 거야. 아니면 다음에 밥 한 번 먹자와 비슷한 공수표인 거야’를 되뇌며 온몸으로 칭찬을 방어하기 바빴다.

어쩌면 사람에게 낯가림이 있듯이 칭찬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걸까.

처음 본 사람의 칭찬에는 로봇 마냥 삐그덕 대며 겨우 상황을 모면하려는 반면 안면을 튼 사이에서 하는 칭찬에는 몸이 사르르 녹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 나 또한 처음 본 사람에게는 칭찬을 남발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탐색을 천천히 하다 보면 저절로 그 사람의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다음에야 신중하게 칭찬을 건넨다. 마찬가지로 상대도 나와 같은 신중한 칭찬을 기했음이 느껴지면 그에 맞는 적당한 겸손과 감사함을 표한다.

여전히 부끄럽고, 몸이 베베 꼬이며, 손이 저절로 손사래 치려 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 뒤에서 나를 꾸준히 지켜봐 왔을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니 그 눈을 마주 보며 당당하게 칭찬을 누리고 싶다. 몸짓은 최소한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움을 살짝 티 내며 상대의 눈을 보고 ‘그래? 고마워’ 은은한 미소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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