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성장 중입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때가 많아졌던 무렵, 아들 방을 옮기면서 아들이 쓰던 책상을 내가 쓰기로 했다. 자연스레 내 작업방이 생긴 셈이다. 그전의 작업실이라면 부엌 식탁이었다. 그곳에서 방송대 학사 학위 두 개와 7권의 미출간 번역서 그리고 수많은 손그림들이 탄생했다. 새로 장만한 내 작업 공간에서 '나의 오르세'란 주제의 그림을 50점 완성하기도 했다.
이 글의 표지로 쓰인 그림은 인상주의 화가 '바지유'가 가족별장에서 사촌누이를 그린 <핑크 드레스>를 따라 그린 내 그림이다. 작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처음 방문하곤 반나절밖에 머물지 못해 마지못한 발걸음을 돌리며 다음에 갈 땐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내 스케치북을 채우리라며 아쉬운 마음을 다독였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 사태를 보아하니 오르세는커녕 유럽여행은 몇 년간 불가능할 듯싶다. 그래서 시작한 게 오르세 오디오 가이드 앱의 설명글을 필사하며 명작을 따라 그려 보는 '나의 오르세' 프로젝트였다. 지금은 잠시 멈춤 상태지만, 어떻게든 이 그림들로 미술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
문화센터에 나간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내게 미술을 배우러 오는 수강생도 제법 늘어났고, 평생교육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습을 하러 오는 실습생의 교육지도도 맡아 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수입이 생긴 건 고마운 일이나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릴 마음의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게 아쉽다. 처음엔 센터를 작업실 삼아 자주 나갔었지만, 시어머니 일과 코로나 사태가 내 생활의 패턴을 바꿔놓은 데다 책임질 일까지 맡게 되니 하고 싶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확실해졌다.
가족 특히 남편과 시간 보내기
그리고픈 그림 그리기
읽고픈 책 읽기
쓰고픈 글 쓰기
만나고픈 사람 만나기...
한심하리만큼 한가로울 수도, 별것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내겐 이보다 소중한 건 없다.
쉰을 넘긴 한국 아줌마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이미 성장한 외동아들은 서른을 바라보지만,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니 내가 할머니가 될 확률은 매우 낮다. 등 넘어까지 길게 기른 생머리와 남들보다 흰머리가 늦게 나온 탓에 내 나이가 쉬이 가늠되지 않는다 한다. 그렇다고 날씬하거나 미모가 출중한 편도 아니다. 그저 머리를 손질하는데 신경 쓰기 싫어 기르고 있는 거지만, 시원스레 자르자니 더 별 볼 일 없어질 것 같아 놔두기로 했다. 이젠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됐으니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미용실 언니도 이 모습이 어울린다고 인정해줬다.
나이와 외모가 성장하는데 무슨 상관일까 싶긴 하다. 다행히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며 무얼 잘하고 못하는지 정도는 잘 파악하고 있다. 그 한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 그게 성장의 다른 이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