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 성당
10. 19. 일
일요일이라 느지막이 여유 있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들은 전시장으로 갔다. 전시회 마지막 날은 물품들을 싸게 판다고 잔뜩 기대하며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나는 숙소에 남아 짐 정리를 했다. 창밖의 날씨가 너무 좋아 11시 전에 시내 투어를 하러 숙소를 나섰다.
U반을 타고 베를라이너 광장에서 내렸다. 지역 마스코트 같은 곰 동상이 마중 나왔다. 그런데 주변이 다 닫혀 있었다. 원래 가려던 곳은 IKEA 매장이었는데 쓸쓸히 낙엽만 뒹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휴일 풍경을 생각한 게 실수였던 거다.
옛날에 쓰던 공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IKEA 매장의 모습이 무척 궁금했는데 겉보기로 만족해야 했다. 천천히 걸어 일전에 가봤던 케네디 광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에센 시내가 그리 크진 않았다. 햇살이 좋아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스산한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니 저 멀리 케네디 광장이 보이고 제법 많은 사람들도 보였다. 상점가가 문을 닫은 대신 카페들은 죄다 열어 한가로이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 거다. 잠시 후 교회 종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매시 15분과 45분에 종이 울리는데 왜 정각에 울리지 않는지 궁금했다. 아무튼 에센에서 유명하다는 성당 안으로 종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성당 입구로 들어서니 사진 촬영이 금지다. 성당 안은 비교적 작은 편이었지만 또 그만큼 아늑해서 마음이 편했다. 마침 일요일 오전 미사가 시작되려 해서 나도 긴 의자 한 귀퉁이에 앉았다. 딱히 갈 데도 없었지만 독일에선 미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했다. 나는 종교가 없으나 가톨릭의 이런 분위기를 무척 좋아한다.
성당 안에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반주에 맞춰 부르는 성가대의 노랫소리와 신부님의 낮고 깊은 설교 음성이 듣기 참 좋았다. 약 1시간 30분 간의 긴 미사가 끝나자 신자들 사이를 돌고 있는 바구니에 적으나마 헌금도 하고 주변에 함께 앉았던 신자들과도 악수를 나눴다.
성당에서 고이 모시고 있는 '황금 마돈나'라는 성모자상 앞에 촛불을 켜고, 한쪽 켠에 누워계신 예수님의 발도 가만히 쓰다듬으니 왠지 모를 뭉클함이 밀려왔다.
성당에서 나와 시청사(Rathaus)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큰 길가에서 모퉁이를 도니 커다란 건물인 시청사가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으로 이슬람 회교도 사원과 가톨릭 교회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이색적이었다.
시청사 백화점은 이틀 전에 들렀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휑뎅그레 했다. 상점가를 지나 시청사 앞으로 갔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 전망대에도 못 올라갔다. 독일에서 가장 큰 시청사라는데... 아, 관공서라 일요일엔 쉬는구나 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으나 성당에서 잔돈을 탈탈 턴 덕에 동전이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유럽은 화장실도 돈(50센트)을 내야 해서 점심도 먹을 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선 화장실을 그냥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케네디 광장에 면한 어느 레스토랑에 앉아 햄버거와 커피를 주문했더니 거대한 햄버거나 나왔다. 반만 먹어도 충분히 배부른 양에다 맛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하늘은 쾌청했으나 바람이 너무 불어 길가 먼지까지 먹는 듯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레스토랑에 앉았다가 화장실에 가기 전에 계산을 했다. 잔돈이 없으니 웨이터 아가씨가 오히려 팁을 두둑이 챙겨갔다. 햄버거도 남겼는데 싸오고 싶은 걸 참았다. 대부분 화장실이 건물 지하에 있어 좀 무섭기도 한데 이곳 역시 그랬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엔 대부분의 상점들은 닫혀 있고 카페나 레스토랑은 성업 중이고 길거리 분식(?)점들은 언제나 열려 있다. 길거리나 열차 안에서 손에 먹을 걸 들고 우걱우걱 먹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걸으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중앙역은 항시 붐비는 곳이라 그나마 상점들이 열려 있었다. 그중 서점이 눈에 띄어 매우 반가웠다. 독일어는 읽을 줄 몰라도 책의 기운을 받기 위해 한 바퀴 돌고 커피도 한잔 더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들은 벌써 저녁까지 먹고 와있어서 남은 짐을 마저 쌌다.
이제 그간 정든 에센을 떠나 코블렌츠로 이동했다가 하이델베르크로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