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데스하임
우리는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리프트를 타러 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낡아 보이는 리프트였으나 왠지 독일은 안전할 것 같단 근거 없는 믿음으로 올라탔다. 약간 추운 날씨인 터라 관리인 아저씨가 방석을 턱 얹혀주셨다.
리프트는 우리를 대롱대롱 매달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위를 끌고 올라갔다. 생각보다 긴 코스여서 놀랐다. 오를수록 안개는 더 짙어지고 주위는 말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조용해 무섭기까지 했다.
리프트에서 내리자 영화 <미스트> 찍는 거 아니냐, 저 안갯속에서 뭐가 튀어나올 것 같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안갯속에서 레스토랑이 홀연히 나타났다.
따뜻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흡사 <블레어 위치>에 나올 듯한 안개 낀 숲 속 길을 바스락거리는 발소리에 맞춰 얘기를 나누며 또다시 천천히 걸었다. 아들과 마크가 더 많이 친해져서 무척 흐뭇했다.(참고로 마크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신다. 아들의 영어실력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도치 엄마...) 그리고 그때 한국에서 남편이 카톡으로 신해철의 부고를 전해왔다...
니더발트 기념비인 '게르마니아 여신상' 앞에 섰다. 여신 양쪽엔 전쟁을 선포하는 동상과 승리를 선포하는 동상이 나란히 있다. 1871년 보불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에서의 승리 기념과 그 후 독일을 통일하여 제국으로 선포한 것을 함께 축하하는 기념비라 '니더발트 독일 통일 기념비'라고도 한다. 여신상 아래 조각된 건, 독일을 통일한 빌헬름 1세의 황제 즉위식을 나타낸 거다.
이번엔 곤돌라를 타고 내려갔다. 그저 드넓은 포도밭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노라니 무념무상이 따로 없었다. 햅쌀로 추석을 지내는 우리네처럼 여기선 그해에 첫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축제를 벌이는데, 아쉽게도 바로 지난 주말에 끝나버렸다.
곤돌라의 도착지는 유람선을 타기 전에 잠깐 둘러봤던 그 유명 가게(케테 볼파르트) 옆이었다. 찬 바람을 쐰 탓에 화장실도 들를 겸 우아한 찻집에 들러 달콤한 케이크와 커피로 몸을 녹였다. 커피에 술을 탄 '뤼데스하임 커피'가 이곳 명물이지만 그건 눈으로만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