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스터 에버바흐
마크의 차가 당도한 곳은 고즈넉한 어느 산속이었다. 오전에 차 안에서 마크가 영화 <장미의 이름>의 촬영지를 돌아가는 길에 들를 수 있으면 가자고 했던 거다.
'클로스터 에버바흐(Kloster Eberbach)'의 클로스터는 '수도원'을, 에버바흐는 '산돼지 실개천'을 의미한다. 그 옛날 수도원의 터를 잡을 때 수도사의 꿈에 산돼지가 나타나 송곳니로 이곳에 금을 긋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12세기 초 독일의 첫 수도원이 이곳에 세워지고 300여 명의 수도사들이 포도원을 관리하여 800년이란 유서 깊은 와인 제조 명소가 되었다. 그러니 숀 코네리 주연의 영화 <장미의 이름>의 주무대가 된 건 당연했다.
수도원 안뜰에 있는 작은 잔디밭 한쪽에 머리채처럼 나뭇가지를 축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수도원 안에 있는 성당은 이제껏 봐온 성당 중 가장 투박하고 휑했으나 수백 년의 세월이 느껴졌다.
영화 속에서 수도원 도서관으로 나왔던 너른 홀은 300명 이상의 수도사들이 함께 잠을 자던 곳이었다. 유서 깊은 수도원답게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았으나 독일어를 몰라 그냥 눈과 느낌으로 감상했다. 수도원 모형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엄숙한 기운이 도는 긴 회랑을 그 옛날 수도사들이 지나다녔을 걸 상상하니 기분이 묘했다.
날이 저물어갈 무렵, 잠깐 마크 집에 들렀다. 안주인이 없는 커다란 집은 넉 달 전에 머물렀을 때보다 확실히 썰렁했다. 형님의 유품은 이제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려고 우리가 먹을 음식 사진들을 찍는데 마크의 음식이 나오지 않자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함께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무려 12시간을 마크는 우리와 함께 지냈다. 완벽한 투어에 엄청 비싼 한국 음식까지... 매우 미안해했더니 마크는 요즘 혼자 저녁을 먹는데 오랜만에 함께여서 되려 고맙다고 했다. 정식 호칭은 아주버님이지만, 아들 따라 마크 아저씨란 호칭이 편해지는 분이다. 남은 생애도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