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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고층 빌딩에 올라서다

프랑크푸르트

by 돌레인

10. 28. 화



아침부터 하늘엔 구름이 잔뜩 껴있고 바람까지 불어 더 싸늘한 날씨였다. 독일의 날씨는 변화무쌍해 우산은 필수품이다. 뮌헨이 너무 컸다면, 프랑크푸르트는 고층 빌딩 숲처럼 쌀쌀하고 불친절한 인상이었다. 여행일도 막바지라 정을 뗄 셈인지 안내소 직원들부터 불친절해 속이 상했다. 그럼에도 내가 고분고분 상냥하게 응대했더니 나중엔 좋은 하루 보내라며 살짝 웃음 지어주었다. 다음날까지 시내 투어라 아예 프랑크푸르트 카드와 박물관 카드를 구입한 거다. 아들은 한국에서 국제 학생증을 미리 발급해 와 표를 끊을 때마다 할인 혜택을 톡톡히 봐왔다.


아침부터 살짝 불쾌해진 마음을 얼른 털어버리고 계획했던 시내 투어를 시작했다. 중앙역에서 나오니 바로 보이는 큰 건물 위로 금호 타이어 로고가 자랑스럽게 보였다. 첫 행선지가 유로 타워였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건물들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이 카이저 거리가 지름길이다. 하지만 저 건물들은 사실 대규모 집창촌이다. 그래서 남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가라고 했으나 낮이라 슬슬 거닐어보니 길거리 음식도 파는 아주 평범한 거리였다. 그래도 대로변에 이렇게 버젓이 집창촌이 형성돼 있는 걸 보니 선진국은 이런 건가 싶었다.



프랑크푸르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인 메인 타워로 향했다. 여긴 입구에서부터 좀 살벌했다.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200m를 올라갔다. 이 타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네 번째로 높은 건물인데, 유럽 전체에서 고층 빌딩 건축이 허가된 곳은 프랑크푸르트가 유일하다고 한다.




오른쪽 쌍둥이 빌딩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스 은행(Deutsche bank)이다. 이 도이체스를 바짝 추격해 오는 코메르츠 은행(Commerz bank)이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높은 (258m) 건물을 지으며 대응해오자 아예 쌍둥이 빌딩을 지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한국 유학생 대부분이 도이체스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데, 거의 30~40유로에 해당하는 사은품을 준다고 해 울 아들도 당장 개설해줄까 잠시 엉뚱한 고민을 했다.


메인 타워에서 내려와 골목을 크게 돌자 근사한 거리가 나왔다. 바로 '그로세 보겐하이머 거리'인데, 보행자 전용도로라지만 평일인지 많은 차들이 들어서 있었다. 레스토랑과 예쁜 노천카페가 즐비한 돌길이다.


한참을 걸어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근대 활판 인쇄술의 발명가 '구텐베르크' 동상이 있는 큰 광장에 갔다. 괴테 광장과 로스마르크트 광장이 합쳐진 곳인데 주말이나 축제 땐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찰 것 같았다.




광장에서 다시 골목으로 진입해 조금 돌아가니 괴테 박물관과 괴테 하우스가 보였다. 간판이 없었으면 그냥 일반주택으로 알았을 거다. 여기선 가방을 코인 로커에 집어넣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내부에 들어서자 한 복판에 널찍한 강의실이 있었는데, 아마도 각종 문화 행사들을 하는 곳인 듯싶었다. 그 둘레로 작은 박물관이 있었는데, 대부분 괴테가 남긴 노트나 편지들이었다. 독일어 문맹자라 무슨 내용인진 모르겠으나, 글씨체는 정말 명필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유려하게 썼을까... 그러니 여러 여자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을 테지...


괴테 생가는 1733년 괴테의 할머니가 구입한 저택으로, 1755년 괴테의 아버지가 대대적인 개보수를 했다. 법률가인 괴테의 아버지는 제실 고문관이었고, 어머니는 시장 딸이었으니 괴테 집안은 상류층이었던 거다.


괴테는 케스트너라는 외교관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에겐 샤를로테 부프라는 약혼녀가 있었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괴테는 열렬한 짝사랑에 빠지나 얼마 뒤 한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권총 자살을 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그 권총을 케스트너가 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소재에 자신의 체험을 섞어 쓴 소설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그로써 20대 중반의 나이에 괴테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괴테 하우스에서 나와 큰길로 나가자 건너편으로 파울 교회가 보였다. 사실 이름만 교회지 독일 최초의 자유선거로 구성된 프랑크푸르트 국민 의회의 회의 장소로 사용돼온, 독일 민주주의가 시작된 역사 깊은 장소다.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뢰머 광장엔 정의의 여신 분수와 '오스트차일레' 건물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시청사를 라트하우스 대신 로마인이라는 뜻의 '뢰머'라고 부른다. 대성당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끝나면 이 시청사 건물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제1제국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거지였으며, 1805년 나폴레옹이 점령할 때까지 5.5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 도시였다. 역사박물관엔 약 800년 전 12, 13세기 중세 독일을 다스렸던 슈타우퍼 가문의 시대를 전시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려고 명품 거리인 '차일 거리'를 걸었다. 밤이 되니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코메르츠 은행 건물이 보였다. 그 옛날 위병소와 감옥의 용도로 썼던 '하우프트바헤(중앙 위병소)'가 있는 이곳을 하우프트바헤 광장이라고 일컫는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주변은 시내 중심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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