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영혼의 자유인 손암 정약전

by 돌레인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 저, 아이세움 출판사, 2006


책장을 덮고서도 한참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의 외롭고 애틋한 유배지에서의 삶이 2세기를 뚫고 내 가슴을 관통한다.


일찌감치 학문에 대한 경계를 두지 않는 자유분방함으로 겪어야 했던 대가였을까... 유배생활을 견디면서도 그가 행한 일은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몸은 자유롭지 못하였으나 정신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던 한 사람의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나는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흑산도는 부끄럽게도 내겐 자연스레 횟집을 떠올리며 홍어로 유명한 섬의 이름일 뿐이었다. 그 이름이 자산(玆山)으로 또는 현산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됨을 고백한다. 그 이름 또한 그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이 형을 위해 붙여 준 것으로 애틋하고 절절한 형제애를 엿볼 수 있었다.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


오래전 자원활동하던 곳에서 꽃씨 파티가 열렸었다. 버려진 텃밭과 돌보지 않던 꽃밭을 둘러보며 이름 모를 풀꽃들이 그렇게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 풀꽃들의 이름을 알게 되니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풀꽃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관심을 가져주고 안부를 묻는 일... 그러면서 관계 맺음이 시작된다. 그래서 정약전의 물고기에 대한 관심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생긴 모습 그대로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게 되는가를 정약전은 사람들과 함께 연구했다.


짙푸르고 거친 바다 물결 속에 떠 있는 섬 흑산도는 거대한 조개껍데기이고 나 정약전은 그 속으로 들어온 한 마리 파랑새이다. 그 새는 머지않아 거대한 검은 껍데기를 열어젖히고 훨훨 날개를 저으며 뭍으로 날아갈 것이다.(p.158)


자유를 향한 그의 절절한 염원에 목이 칼칼해 왔다. 유배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가 되어 초월하고 싶었던 한 유배객의 바람(p.161)... 섬을 벗어나지 못하고 섬에 묻혀 하나의 섬이 된 사람들(p.162)... 이런 측은함이 정약전과 섬사람들을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게 했었던 것이리라...


전통적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정면으로 도전한 진보적 지식인(p.207), 하찮은 생명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하게 여겨 벗을 삼을 수 있는 정신(p.209)의 소유자, 그래서 때 묻지 않은 동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던 정약전이 되찾고 싶었던 본성은 모든 억압적 질서로부터 놓여나 자연과 어울리는 자유의 상태에 가까운 것(p.211)이었다.


그리고... 칠판에 이마를 기대고 흐느낀 어느 무명교사의 마음(p.210)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약 14년 전 이 책을 읽고난 후 썼던 내 글이다. 마침 영화로도 만들어져 손꼽아 기다리다 친정엄마랑 개봉일인 어제 관람했다. 영화는 섬총각 '창대'와 정약전의 나이를 초월한 사제간의 우정에 더 초점을 맞춘다. 영화 <동주>처럼 흑백으로 표현하니 그들의 마음이 더 다가왔다...


최백호의 '바다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