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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우키요에 속 미인화

by 돌레인

내가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일본학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무렵이다. 일본을 공부해보자는 학생의 입장에서 일본을 바라보기 시작하니 글자를 깨치는 것 마냥 일본의 속살이 보이는 듯해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었다.

그러다 만난 그림이 우키요에 미인화였고, 알게 된 화가는 근대 일본 작가이기도 한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였다. 그리고 유메지에 이르기까지 일본 미인화의 계보를 알고 싶었었는데, 마침 이 책을 발견한 거다.


우키요에는 도쿠가와(徳川) 막부의 에도(江戸) 시대 때 성행한 일종의 풍속화다. 신흥 계획도시 에도(도쿄)에서 상업이 발달하면서 조닌(상인)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교토에 비해 문화적인 열등감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지배계급인 사무라이와는 다른 문화를 발전시킨 조닌들의 독특한 문화가 바로 우키요에다.

미인의 기준이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화하듯 미인화 또한 그 시대 그 당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겼던 이상적인 미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 조금씩 변화해 왔다.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는 서적의 부속물이었던 판화가 독자적인 상품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한 우키요에의 개조(開祖)다. 그가 그린 미인화는 주로 뒤를 돌아보는 자세에 다소 수동적이고 전시하기 위한 태도를 보인다.



그 뒤를 이은 가이게쓰도 안도(懐月堂安度)는 유곽인 요시와라의 유녀들을 그린 미인화로 유명하다. 판화가 아닌 육필화만 그린 그의 미인화는 굵고 강렬한 필치로 몸집이 큼지막하고 표정과 몸가짐이 당당해 시원시원하다. 이것은 되도록 빨리 많은 육필화를 그리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는 우키요에 기법을 완성시킨 화가인데, 그의 미인화는 안도와는 정반대로 몸집이 작고 손발이 가늘며 몸짓이 요염하고 우아하다.



하루노부가 죽은 뒤 그 계보는 이소다 고류사이(磯田湖龍斎)로 이어지는데, 미인의 턱이 조금씩 커지고 현실감이 더해간다. 이런 사실적이고 건강한 미인화의 유형은 도리이 기요나가(鳥居清長)에 이르러 확립되는데, 여인의 얼굴은 작고 키가 크고 늘씬해 그림 전체 분위기가 위아래로 길쭉하면서 부드럽다.



미인화의 계보는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磨)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타마로는 일본 안팎에서 꼽는 우키요에 미인화의 대표 화가다. 화면 가득 미인의 얼굴과 살갗을 클로즈업하고, 선보다는 색채와 질감을 더 중시해서 훨씬 풍성하다.



우타마로 사후, 우키요에 미인화는 정형화되어 생기를 잃는 데다가 유럽과 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회화 기법과 사진술로 곤두박질친다. 개항 직후, 일본 양화의 개척자인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가 유녀의 초상화를 유화로 그렸는데 오히려 그 얼굴이 실제에 가까워 모델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개항 전후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의 미인화는 서구 귀부인 차림에 일본의 전형적인 우키요에 여인의 얼굴을 담았다.



이렇게 전통적인 우키요에 판화가 몰락한 뒤에도 우키요에 미인화의 미의식인 단아하고 가녀린 모습을 계승한 근대 화가가 바로 다케히사 유메지였다. 흡사 모딜리아니의 여인을 닮아 서양풍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전통적인 일본 미인들의 이상적인 모습이어서 사실 뜻밖이었다.


전단지나 브로마이드 격인 우키요에의 장점은 신속한 생산과 규격화였다. 판화와 인쇄술의 발달, 화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방에서 도제들이 한 팀을 이뤄 우키요에를 쉴 새 없이 찍어냈던 것이다. 그런 장점은 한편으론 일회용 소모품으로 여겨졌기에 유럽으로 수출되는 도자기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종이 쪼가리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네, 드가, 고흐 등의 유럽 인상파 화가들의 눈에 띄어 '자포니즘'이란 일본 열풍을 일으키게 한 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유럽인들을 매료시킨 건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상과 원근법이었지만, 사실 그건 이미 서양에서 수입된 안료와 회화나 판화 기술 덕분이었다. 결국 유럽인들은 서양 요소의 또 다른 변형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과연 자포니즘은 일본 독자적인 창작물이었던가 혹은 그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안도 히로시게의 <오하시와 아타케의 천둥,1857>(좌)을 모사한 고흐의 <빗속의 다리, 1887>(우)

도쿠가와 막부의 몰락과 함께 막을 내린 우키요에지만, 그 옛날 에도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돌아보게 하는 건 일본인들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일본 역사상 한국에게 가장 우호적인 지배세력이었던 도쿠가와 막부와 에도 시대. 그 당시 서민의 여러 생활상을 깊이 있고 알차게 생각하게 하며 우키요에의 다양한 매력에 푹 빠질 수 있게 한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은 그해(2013), 나는 우키요에를 직접 보러 일본으로 날아갔다.

도쿄 메이지진구 마에(明治神宮前)역 근처에 위치한 오타(太田) 기념 미술관은 일본 실업가 5대 오타 세이조(太田清藏)가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우키요에들을 전시하고 있는 개인 미술관이다. 마침 우타가와 쿠니요시(歌川国芳)의 재미있는 우키요에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도쿄 대학 뒤에 위치한 야요이 • 다케히사 유메지 미술관이었다.

기획전으로 야요이 미술관에선 일본 소녀 만화의 원조인 <마쓰모토 카쓰지(松本かつぢ) 전>이, 다케히사 유메지 미술관에선 다이쇼 시대 모던디자이너 <코바야시 카이치(小林かいち) 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저 마음 편히 일본을 오갈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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