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의 석학자가 분석한 일본인의 특성

by 돌레인

일본이란 나라를 손에 잡힐 듯 분석한 책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보다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단언한다.


영어에는 없으니까 곧 일본어에만 있는 것이라는 이 희한한 논리는 영어는 곧 서양이고, 서양은 곧 세계라는 일본인의 환각 증세에서 생겨난 것이다.(p.17)


영국 부인과의 대화에서 아마에(甘え, 한국어의 어리광 혹은 응석)에 해당하는 영어가 없으니 일본 특유의 문화라고 단정한 것이나, 해초를 먹고 젓가락을 쓰며 복잡한 경어를 쓰는 아시아인은 일본이 유일하다 라는 예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예전 니토베 이나조가 <무사도>에서 사무라이 정신인 무사도가 유럽의 기사도와 동등하다며 자랑한 대목을 반박한 책 <사무라이 정신은 없다>와 겹쳐졌다. 물론 이런 문제제기는 이어령 선생이 먼저 하셨지만 말이다. 그러며 일본 특유의 문화를 잘 알려면 한국을 알아야 하며 한국인이 일본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특성을 좀 더 치밀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서양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시선.(p.21)


일본인의 축소지향을 잇슨보시와 모모타로, 긴타로, 우시와카마루, 가구야히메 등의 옛이야기 속의 작은 거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겹겹이 겹쳐 정리하는 이레코, の로 명사들을 연결해 백 마디 의미를 17자로 축소해 버리는 하이쿠, 쥘부채와 주먹밥, 실물을 간단 명료화하게 미니어처화한 아네사마 인형과 가나 문자, 잡다한 것을 모두 쓸어 담은 도시락, 움직임을 잡아둔 것 같은 호쿠사이의 파도나 역동적인 동작의 응집인 가마에를 볼 수 있는 能와 각종 道, 관념적인 가계도인 한국의 족보에 비해 시각적인 일본의 가문 문장이 가게의 노렌과 회사의 명함까지 이어져 오는 등, 추상성보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하나하나 예를 들며 설명한다.

일본인은 자연도 축소를 하여 자기 집에 조그만 정원을 만들어 급기야 가레산스이라는 돌과 모래만의 독특한 정원을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분재와 꽃꽂이를 발달시켜 방안의 도코노마에 까지 끌어들이는 소유욕!

이런 물건에 대한 집착은, 좋아한다는 好き(스끼)가 수를 모은다는 数寄에서 유래한 것에서 알 수 있다는 대목에서 과연!이라고 무릎을 치게 했다. 물건을 모으는 物数寄 는 数寄者를 양성하게 되어 그 문화를 발달시킨다. 바로 오타쿠의 모습이 아닌가! 차를 마시는 행위보다 그 다기들을 모으는데 열중했던 일본인. 오죽하면 다도를 즐겼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으로 불렸을까!

어딜 가나 그 명소의 스탬프를 찍고, 그 지역의 오미야게를 사고, 열차에서 파는 도시락인 에키벤을 먹으며 온천장을 돌며 도장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일본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지의 땅을 개척하며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미국의 꿈이 '발명'이라면, 일본은 이미 있는 것을 작게 줄이는 '개발'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을 번영의 길로 인도했다.

그러나 이런 축소지향의 일본이 확대지향으로 방향을 틀면 무지막지한 왜구의 모습을 띤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왜구침입이나 임진왜란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그 예다.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한없이 순하고 정교한 일본인이지만, 그 무대가 커져버리면 망상에 사로잡히는 광장 공포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들의 독특한 집단 문화인 우치(內)와 소토(外)의 명확한 구별은 그들의 대외적인 활동을 더 어렵게 만든다. 외부인을 철저히 배격하는 그들의 습성상 아시아에도 구미에도 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신의 정체성마저 찾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왜 그들이 주변 국가들에게 행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그토록 어려운가가 설명이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고백'은 있으되 '참회'가 없다는 일본.
전 세계와 함께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따끔하게 충고하는 한국의 석학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일지는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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