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항에서 늦은 오후에 출발한 비행기는 약 11시간을 날아 같은 날 정오 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날짜 변경선을 넘은 덕에 하루를 더 벌게 된 셈이다. 약 15년 동안 라스베가스에 출장을 다닌 남편은 샌프란시스코를 그토록 많이 경유했어도 공항 밖으로 나가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12시간 대기가 있는 항공편을 택한 이유도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당도한 곳은 입국 심사장이었다. 내가 20대 때, 미국으로 이민 가는 친구가 입국 시 인터뷰 때문에 큰 걱정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미혼의 여성은 특히나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유럽 여행 시는 워낙 국경 넘는 게 수월해 가족인 경우 도매급으로 심사를 해서 웃기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미국 입국 심사장의 모습은 긴장감이 돌았다. 젊은 남성의 경우 서류 검사가 더 까다로웠고, 젊은 여성의 경우엔 왜 왔느냐며 호통치듯 질문을 해대서 쩔쩔매는 모습을 짓궂게 즐기기까지 했다.
남편이 먼저 심사를 받으며 나를 가리키니 심사원이 오라고 손짓했다. 다행히 가족은 한꺼번에 처리해 줘 나는 옆에서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통상 묻는 질문인 여행 목적을 묻는 질문에 남편은 30주년 결혼 기념으로 왔다고 자랑하듯 말했으나 심사원은 시큰둥했다. 게다가 머물 호텔명은 뉴욕이 아닌 라스베가스를 물어 예상 답안이 빗나갔으나 남편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잘 했다. 영어를 잘하는 남편이 참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검색대는 911 테러 사태 이후 더 강화되었다는데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신발은 물론 허리띠까지 풀고 원통 안에 들어가 양 다리를 벌리고 선 채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360도 회전하는 몸 검색을 한다. 나도 물통과 머리핀 때문에 일본에서 걸린 적이 있어 혼이 났는데, 바르샤바 공항에선 시큼한 땀 냄새를 풍기는 뚱뚱한 여직원한테 몸수색을 당했었다. 머리핀을 풀러 산발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온몸을 샅샅이 털리는데 좀 수치스러웠었다. 어떤 점잖게 생기신 멕시코 아저씨가 심하게 몸수색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없이 그저 몸을 내주고 계셔서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무튼 미국은 테러와 마약과의 전쟁이란 표현이 딱이었다.
짐을 뉴욕발 비행기 편으로 다시 부쳐야 해서 유나이티드 항공사 카운터로 갔다. 인상 좋은 흑인 직원이 싹싹하고 다정하게 대해줘 살벌했던 입국장과 검색대 인상을 빨리 지울 수 있었다.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을 나섰다.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케이블 전차를 타려면 중심가인 유니언 스퀘어까지 가야 해서 공항에서 출발하는 Bart라는 전철(왕복 $21/약 28,000원)을 타기로 했다.
전철 안은 넓었으나 의자들은 아주 많이 낡았다. 게다가 날카로운 전철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이런 상태로 약 45분을 달려갔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