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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레인 May 04. 2023

케이블 전차 / 어부의 부두

시끄러운 전철의 소음 소리에 무뎌질 무렵 파웰 스트리트 역에서 내렸다.  케이블 전차의 종착역이자 출발지는 파웰 스트리트와 마켓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곳에 있었다.

표지판만으로도 반가운 서울~~


골목이 온통 전찻길이었는데 양옆의 건물들은 거의 비어있었다.  샌프란시스코도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코로나 타격에 부침을 겪고 있었다.  이는 늘어나는 노숙자 수와도 무관하지 않아 왠지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2인 1조로 짝을 이룬 케이블카 운영자들은 대부분 고령이셨는데, 힘겹게 케이블 전차를 돌리는 모습과 길거리에서 널부러 자는 젊은 노숙자들이 묘하게 대비되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갔던, 일본 시코쿠의 도고온천 지역의 봇짱 열차 때와 비슷한 풍경이었으나 기분은 사뭇 달랐다.


케이블 전차는 관광객들을 옆구리에까지 가득 싣고 샌프란시스코 언덕길을 질주해 올라갔다.  초인종은 줄을 당기는 옛 모습 그대로다.  주변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로맨틱한 풍경과는 다를 테니 의외로 실망스러울 거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라 수긍했다.







케이블 전차의 종착역에서 내려 '어부의 부두'라는 뜻의 Fisherman's Wharf까지 걸어갔다.  부둣가 일대가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가벼운 차림의 관광객들과 더불어 활기차 보였다.

시큼한 샌프란시스코 빵과 게찜 요리가 내가 먹은 미국의 첫 음식이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남편과 둘이서 오붓하게 먹었는데 너무 짜서 다 먹질 못했다...ㅠㅠ  


바다사자로 유명한 피어 39까지 걸어갔는데,  그 옆 피어 41에서 골든 게이트까지 가는 유람선을 타기로 한 거다.


배가 출발하는데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제법 차고 셌다.  미국도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되어 착용한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는데 우리는 바람막이로 마스크를 썼다.


유람선 주위를 나는 갈매기가 어찌나 크던지 독수리 같았다.  여기선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 갈매기 떼들이 연신 주위만 배회했는데, 자유로운 영혼 '조나단 리빙스턴' 같은 갈매기들의 날렵한 몸짓에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에서만 봤던 빨간 현수교인 금문교를 바로 밑에서 영접했다.


유람선은 금문교를 크게 한 바퀴 선회한 후,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기로 악명 높은 감옥 섬인 '알카트라즈 섬'을 지나갔다.  숀 코네리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더 록(The Rock)'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현재 관광지로 쓰이고 있다.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중 한가로이 햇볕을 쬐며 잠이 든 한 무리의 바다사자들도 봤다.  


저녁으로 샌프란시스코 명물 빵을 먹으러 보딘 베이커리에 들렀다.  다양한 모양의 빵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모두 시큼한 맛이다.  빵 한가운데를 파내고 따뜻한 수프를 담은 둥근 빵을 먹으니 속이 든든해졌으나 역시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 못해 버리고 말았다.  남은 음식과 종이, 플라스틱 도구들을 나눠 버리려니 통 하나에 몽땅 털어 넣어 사실 놀랬다.  남의 나라엔 환경을 생각하라는 둥 간섭을 그리 하는 미국이 정작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배신감이 들었다.  땅덩어리가 워낙 커 쓰레기 처리 걱정 없는 나라의 오지랖인가 싶기도 했다.






케이블 전차의 막차를 타러 정거장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차가 꿈쩍을 하지 않아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중도 찻길에서 일반 차량이 교통 사고를 내곤 운전자가 달아나 버렸다 한다.  결과적으로 운행이 중지되어 기다리던 관광객들은 한 마디씩 하며 각자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도 서둘러 근처 버스 정류장을 찾아 갔다.

다소 허름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겨우 타고선 유니언 스퀘어에서 내렸다.  사위가 점점 어두워지자 노숙자들이 하나둘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며 본 노숙자들의 충격적인 모습들에 마음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고, 마약에 중독돼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알아본 바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 밸리의 땅값이 크게 오르자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지역 주민들이 노숙자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다.  이에 시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지원금을 주기 시작했으나 정상적인 생활엔 턱없이 부족한 탓에 마약 중독자로 연명한다는 거다.  그런지 다른 주에서도 노숙자들이 원정을 오게 되어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자들의 천국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런 일들은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는 예상에 몸서리가 처졌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역 플랫폼에까지 내려온 젊은 노숙자가 비척거리며 걷다 구석에 힘없이 쓰러져 버리는 걸 목도하며 전철에 서둘러 올라탔다.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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