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 호쿠사이 미술관 앞 놀이터 의자에 잠시 앉아 있는데 한 모녀가 다가와 영어를 할 줄 아느냐며 영어로 물어왔다. 보아하니 한국인 같아 보여 내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하자 서로 와하하 웃었다. 내게도 생소한 곳을 물어와 별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대중교통보다 택시를 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나 같은 뚜벅이 여행자한텐 30분 이내의 거리는 별것 아니나, 복잡한 도쿄의 지하철은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료코쿠 역으로 다시 걸어가 오에도선을 타고 모리시타 역에서 신주쿠선으로 갈아탄 후 9개의 정거장을 지나 신주쿠 산초메 역에서 내렸다. 한참 간 탓에 잠깐 졸았는데 신주쿠란 단어가 안내 방송으로 나와 화들짝 놀라 깼다.
신주쿠엔 ‘세카이도(世界堂)’라는 아주 큰 화방이 있다. 총 5층인데 이곳도 사진촬영이 금지여서 한 층씩 돌며 살 물건들을 찜했다. 하지만 층마다 계산을 따로 해야 했고 심지어 줄이 너~~무 길어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갑자기 배가 고파왔기 때문이다. 腹が減った!!ㅠㅠ
다행히 바로 옆 건물의 지하 카페에서 런치 세트를 980엔에 팔고 있어 지체 없이 내려가 주문했다. 작고 얇게 썬 단무지를 함께 줬지만 김치가 무척 그리웠다…
오후 계획은 신주쿠 근처를 돌다가 오모테산도 힐즈로 넘어가려 했으나 책방에 가고 싶어 간다 진보초로 급변경했다. 마침 타고 온 신주쿠선이 진보초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진보초 역에 내리니 온 거리가 책방 축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 ’분뽀도(文房堂)‘라는 문방구에 가기로 했다.
매장 안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고, 세카이도에서 사려고 한 스케치북을 팔고 있어 엄마한테 드릴 색종이와 함께 흔쾌히 구매했다.
본격적으로 길거리에 나온 책 매대를 훑어보며 진보초 거리를 거닐었다. 비록 내가 원한 책은 없었지만 책등에 쓰여있는 책 제목만 읽어도 무척 재미있었다.
내가 떠나는 3일까지 이어진다는데 그 사이 재방문하진 않을 것 같아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진보초 역에서 이번엔 미타선을 타고 긴자 근처인 우치사이와이초 역에서 내렸다. 겟코소(月光荘)라는 화방에 가려던 건데 영어명만 보고 지하로 바로 내려가게 됐다.
바도 함께 운영 중인 아주 좁은 곳에 두 여성이 마주 앉아 있었는데, 당황하는 나와 눈을 마주친 여성이 상냥하게 어서 오라 맞아주어 할 수없이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의 음식들을 사실처럼 그린 유화가 전시되어 있었고, 츠무라 카나(津村 果奈)라는 화가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거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선 여러 번의 그룹전에 참가한 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다고 했다. 素晴らしいですね!!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굉장하네요!! 축하드립니다~) 하며 인사를 건넸다.
화방은 1층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직접 만든 수채화 물감과 스케치북을 판매하고 있었다. 스케치북은 이미 샀고 수채화 물감은 집에 차고 넘치게 있어 그냥 휘 둘러보기만 하고 나왔다.
긴자에 온 김에 오래전에 가봤던 이토야에 다시 가보기로 해서 길을 따라 한참 걸어갔다. 강남 같은 호화로운 긴자 거리는 역시 나와는 어울리지 않아 거부감만 들어 마침 눈에 들어온 책방에 들어갔는데 쿄분칸(教文館)이라는 기독교 서점이었다. 그래도 일반 책들도 팔고 있어 또 한참을 둘러보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이토야에 들어갔으나 이내 허리랑 다리가 점점 심하게 아파왔고 찾던 잉크도 없어서 낙심하고 말았다. 이 매장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만 있고 내려가려면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외국인들로 북적여 할 수 없이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는데 어서 빨리 호텔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긴자 역에서 히비야선을 타고 숙소 근처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식당에 들어가 저녁까지 먹을 여력이 없을 정도로 방전되었기 때문이다.
내일도 미술관에 갈 예정인데 다리가 벌써부터 아프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