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히비야선을 타러 15분 거리를 되돌아 걸어갔다. 종점인 나카메구로 역에서 내려 지도를 따라 걸어가니 좁은 골목길 끝에 사진 속에서만 봤던 ‘트래블러스 팩토리’가 바로 보였다.
개점 시간인 12시에 맞춰 가선지 내가 첫 손님이었고 뒤이어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처음엔 갖고픈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았으나 이내 다 덜어내고 말았다. 갖고 있는 것에만 애정을 쏟아도 충분할 터인데 더 이상은 낭비일 것 같아서였다.
대신 종류도 다양하게 진열된 스탬프를 내 트래블러스 노트에 꾹꾹 찍었다.
다시 구글 지도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따라 걸어갔다.
진해 군항제 같은, 벚꽃이 피면 근사해 보일 하천이 나타났는데, 메구로 강이란다.
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세련된 옷 가게와 카페들이 들어서 있어 눈요기가 되었다.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 오르다가 ‘소나무’라는 이름의 한국 식당을 만났다. 입맛 도는 김치찌개 향이 나 코를 한참 벌름거렸다.
멋지게 지은 집을 구경하며 경사진 길을 헉헉대며 오르고 보니 평지가 턱 나타났다. 그래서 다이칸야마(代官山)인 건가 싶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할 땐 마을버스를 탔었는데 그때도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돌던 기억이 난다.
거의 1시가 다 되어 눈에 띄는 음식점으로 들어가 런치를 시켰다. 하와이안 식당인데, 착한 가격(1,210엔)에 양도 푸짐했고 맛도 있어 깔끔히 다 먹었다.
커피는 서점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마시려 했으나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자리가 없어 뱅뱅 돌기만 하다가 책만 한 권 사서 나왔다. 다이칸야마 츠타야(蔦屋) 서점은 10년 전에 왔을 때보다 더 넓어지고 더 핫해졌다. 매장 안에선 사진을 못 찍게 해 건물 세 곳을 꼼꼼히 둘러보며 마음에 든 책을 고른 거다. 내가 찾던 마스다 미리(増田ミリ)의 신작이 없어 「まだ温かい鍋を抱いておやすみ(아직 따뜻한 냄비를 품고서 꿀잠)」이란 제목의 음식과 관련된 6개의 단편집을 골랐다.
도쿄타워로 가기 위해 에비스 역까지 걸어가 히비야선을 타고 가미야초 역에서 내려 또 걸어갔다.
가는 길에 ‘아자부다이 힐즈(麻布台 Hills)‘라는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롯폰기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인 아자부주반이 고급 주택가여선지 건물들이 다 호화롭다.
구글 지도가 지름길을 알려주어 따라가는데 계속 층계가 나타났고 그 너머로 도쿄타워가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드디어 영접한 도쿄타워!! 수없이 방문한 도쿄였지만 이제야 제대로 이 타워를 가까이서 보게 된 거다. 서울 토박이가 남산타워를 처음 가보듯, 예전 오사카 친구는 자기 동네에 있는 츠텐가쿠를 나랑 처음 가보고선 신나했었다. 파리 에펠탑을 닮은 빨간 도쿄타워는 밤에 봐야 더 근사하다.
공짜로 볼 수 있는 도쿄 도청사 전망대에서 사방이 건물들로 빽빽이 들어찬 도쿄를 보며 무척 답답했었다. 그런 편견으로 도쿄타워를 올라갈까 말까 망설였으나 막상 올라가 보니 정작 눈에 들어온 건 푸르름이었다. 주변엔 묘지들이 즐비했는데 죽음을 삶 가까이에서 대하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새롭게 다가왔다.
정토종 본당인 ‘조죠지(増上寺)‘와 시바공원이 한눈에 보였다.
프린스 호텔 옥상에선 무슨 촬영이 한창이었고, 저 멀리로 레인보우 브릿지가 보였다.
롯데타워에 비할 바 못 되는 높이(333m)지만, 올해로 65주년이 되는 유서 깊은 도쿄의 랜드마크다. 한참 둘러본 후 밤 풍경은 다른 날로 미루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더운 낮에 땀을 흘리며 걸었던 탓인지 콧물과 재채기가 나와 잠시 커피숍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 히비야선을 탔다.
숙소 근처에서 내려 따뜻한 국물의 유부 우동을 저녁으로 먹으며 몸을 데웠다.
애플 지갑에 저장된 PASMO엔 내 행적이 그대로 기록되었다. 2만보를 걸어 운동은 되었으나 무리한 건 아닌지 걱정이 좀 된다. 갖고 온 감기약을 먹고 푹 자고, 내일은 좀 더 여유 있게 다니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