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지난밤 포스팅을 하느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 탓에 눈을 떠보니 거의 8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일어나 대충 옷을 걸치고선 식당에 내려가 밥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남편한테서 카톡이 왔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 이미 와 있다는 거다!! 하루 만에 출장일을 다 마치고선 도쿄에서 나랑 놀려고 새벽부터 서둘러 달려온 이 사랑꾼 남편을 어찌할꼬~~ㅋㅋㅋ
남편이 묵었던 호텔도 같은 토요코인이었으나 조식이 뷔페로 푸짐히 나와 너무나 비교되었다. 역시 물가 높은 도쿄구나 싶었다...ㅠㅠ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아니어서 우선 남편의 짐을 방에 올려놓고선 내가 오전 중에 가려던 곳으로 걸어나갔다. 도쿄도 11월에 들어서자 낮 기온이 무려 25도 이상으로 치솟아 무척 더웠다.
골목길을 따라간 곳은 빌딩 숲 사이에 있는, 복권 당첨에 영험한 곳이라 이름난 '후쿠토쿠 신사(福徳神社)'다. 신사는 온갖 잡신을 모시는 토속신앙인 일본 고유의 신토 문화지만, 전쟁 신을 모시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때문에 한국인에겐 거부감이 드는 곳이긴 하다. 유럽에서 대성당을 방문하듯 일본의 신사를 방문하면 그저 동전을 던져 넣고 가족의 안녕만을 빌곤 한다. 그런지 일본 복권은 이번에도 당첨되지 않았다...ㅋㅋ
이 근처엔 'COREDO 무로마치(室町)'란 쇼핑몰들이 산재해 있는데, 온통 일본풍 물건이나 음식들을 팔고 있어 흡사 인사동 같은 느낌이 들었다.
COREDO 무로마치 2관 맨 꼭대기 층엔 극장이 있는데, 마침 일본 괴수 영화인 '고지라'가 다음 날인 11월 3일에 개봉한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었다. 고지라 시리즈의 70주년 기념작이라는데 한국에서도 개봉하려나...
식당이 있는 층의 2관에서 1관으로 구름다리를 통해 넘어가는데 우리나라 이자카야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반가운 한글 글귀와 낯익은 음식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가 들어간 곳은 일본식 한상 차림 집이었다. 고등어 된장 조림과 닭 누룩 조림에 각종 야채 츠케모노가 곁들여 나오는 런치 세트인데 티까지 시켜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푸짐하게 먹었다.
건물 지하가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어 긴자선을 타고 긴자 역에서 내렸다. 가고자 한 곳은 MUJI 플래그십 스토어라서 약간 기대감을 안고 갔다. 6층으로 올라가니 MUJI BOOKS가 커피숍과 함께 있었으나 서점은 닫혀 있어 그냥 자리 한편에 앉아 남편은 맥주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같은 층엔 MUJI 호텔 로비도 있었는데 1박에 40만 원 이상이나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씩 내려가며 매장을 둘러보다가 내가 입을 흰 티를 마침 세일 중인 걸로 득템했다. 한국에서도 무지 비싸 MUJI라며 옷은 별로 사지 않는데 눈에 딱 들어온 거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를 땀 흘리며 찾아간 곳은 6년 전에 친정엄마랑도 갔던 센베이 가게였다. 그런데 그 사이 이곳 본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 자칫 길을 헤맬 뻔했다. 찾고 보니 긴자 가부키좌 바로 옆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산 후 바로 앞에 있는 히비야선을 타고 잠시 쉬기 위해 호텔로 돌아갔다.
지하철을 타려고 가던 중 1인용 사무공간을 보게 되어 신기했다. 시간당 1,320엔이란다.
남편이 하룻밤 추가 금액(1,500엔)을 지불하며 체크인을 했다. 나는 거의 2시간 동안 곯아떨어졌는데 며칠 홀로 씩씩하게 지냈다 해도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늦은 오후, 맑은 정신으로 간 곳은 첫날 갔던 다카시마야 본점이었다. 예상대로 여느 백화점 같지 않아 남편이 꽤나 좋아했다.
신관과 본관이 연결된 백화점 옥상 정원도 올라가 볼 만했다.
특히 본점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꼭 타보라 했는데, 그럴만한 것이 근대 시대 엘리베이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데다 다카시마야의 마스코트인 엘리베이터 걸이 상냥하게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러 먹자골목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대형서점 'MARUZEN'에서 그리 찾던 책을 찾아내어 샀다!!
남편이 예전에 가봤던 가게로 갔더니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어 할 수 없이 근처 괜찮은 가게를 물색해 보기로 했다.
중년 아저씨 세 분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가게인데 맛도 분위기도 마지막 날을 장식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우에시마(上島)'라는 체인점 커피숍에 들렀다. <아직, 도쿄>라는 책에서 알게 된 커피점인데, 구리로 된 커피잔이 궁금했다. 이 잔은 차가운 음료만 제공돼서 한 여름에 땀을 식힐 겸 마실 때 제격이다. 밤이 되자 싸늘해진 날씨에 마신 탓인지 몸이 으슬댔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