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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제작기 15] 불펜

by 기은

당초 3월 7일과 3월 12일로 공지된 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 사업 서면심의 결과 발표와 소집심의 일정은 각각 3월 19일과 3월 25일로 변경이 되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수의 시나리오가 접수되면서 일정이 늦어졌다는 안내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그만큼 경쟁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서면 심사는 통과하지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직 고칠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시나리오의 소재 등에서 자신이 있었던 때문이다.


그런 자신감으로 미리 발표 준비를 할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 발표 준비에 손이 가지는 않았다. 혹시나 소집심의 대상자로 선정이 되지 않을 경우, 이를 위해 준비한 발표용 ppt 등도 헛수고가 되어 버리는 셈이었으니까. 그렇게 3월 12일, 강원영상위원회의 홈페이지 발표를 통해 내가 쓴 시나리오가 1차 서면심사를 통과했음을 확인했다. 이제는 정말로 발표 준비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이 이야기는 강원도라는 지역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 점을 생각하면서 발표를 그래도 유쾌하게 진행할 멘트들을 고민했다. 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 사업으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에서 발표를 진행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만든 첫 단편영화 [내 자전거]와 이번 [번데기]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발표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하자 문득 [내 자전거] 촬영을 막 마쳤을 즈음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 나 스스로에게 단편영화를 딱 세 편만 연출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 그 세 편을 작업하면서 나에게 영화인으로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 첫 영화를 같이 작업한 배우들이 성인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나 또한 영화인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이 세 편의 단편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 나에게 재능이 있다면 이 세 편의 단편영화를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편 작업도 하게 되지 않을까. 재능이 없다면 이 세 편으로 끝날 테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삶에 의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아이는 (언제 / 어떻게 / 왜) 어른이 되는가.


그렇게 마련한 [내 자전거]와 [번데기]의 연관성은 이것이었다. [내 자전거]가 아이가 언제 어른이 되는지에 관한 답을 탐색하는 나름의 과정이었다면, [번데기]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를 찾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번데기]가 지닌 이야기의 가치와 의미로 시작한 발표 ppt는 완성된 영화의 모습을 예상하게 하는 레퍼런스 이미지와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과 일정 계획 등을 더해 완성되었다. 그렇게 소집심사 하루 전인 3월 24일, 담당자님 이메일로 ppt 파일을 제출했다. 불펜에서 몸을 푸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마운드에 오를 시간이었다. 내가 준비한 공을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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