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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준 Nov 16. 2021

노스탤지아 下

쉼터는 오래된 건물 3층에 있었다. 건물의 1층에는 국숫집, 2층에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공장의 사무실 같 아 보이는 것이 들어와 있었고. 올라가는 계단 입구 유리문에 

-3층,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 누구나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노란색 A4용지에 검은 매직펜으로 쓰여 있을 뿐 그곳이 쉼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식은 하나도 없었다. 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이의 방문을 알리는 현관종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중년의 남성과 채영의 또래로 보이는 두 소년이 일제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접힌 자국 하나 없이 새하얀 셔츠를 차려 입은 중년의 남성이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노아, 일주일동안 어디에 있던거야? 걱정했잖아. 옆에는 못 보던 친구네?” 노아는 남자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오늘 하루만 자고 돌아갈 애야, 단 하루만.” 채영은 ‘하루’를 강조하는 노아에게서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중년의 남성은 자신을 이 곳의 원장이라고 소개하며 고생했을 것인데 배가 고프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어젯밤부터 오늘 오후까지 한 끼도 못 먹은 채영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원장은 밥을 차려올 테니 이곳을 잠시 둘러보고 있으라고 말하곤 부엌으로 들어갔다. 채영은 노아와 원장의 연달아 베푸는 친절이 꽤 마음에 들다 못해 감명 깊었다. 그녀의 부모는 날카로운 말투로 혼을 내기 일쑤였지만 이곳 사람들은 상냥하게 채영을 배려해 줬다. 평생을 살아온 집보다 이곳이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채영은 왠지 모르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50평 남짓의 쉼터에는 4개의 방이 있었고 숙소로 활용되는 3개의 방에는 각각 2개의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이곳에서 머무는 이들의 짐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젤 안쪽의, 아마 구조상으로 가장 클 것 같아 보이는 마지막 방에는 -원장실, 들어가지 마시오. 라고 쓰여 있는 문패가 달려있었다. 문패 속 경고의 문구와 굳게 닫힌 문. 그것이 16살, 호기심 많은 소녀에게 주는 자극은 탐스럽게 익은 빨간 사과가 돋우는 식욕과 다를 바 없었다. 채영은 원장이 부엌에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는 -달그락 소리와 함께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고 있었다. 채영은 원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다가 문 손잡이를 잡아 댕겼다. 열려진 문 틈새에서 무거운 남자 향수의 향기가 새어 나왔다. 채영은 한쪽 눈을 감고 열려진 틈새를 통해 안을 바라봤다. 문 정면에 커다란 집무실 책상과 데스크탑이 있었고 그 뒤로 책장에 책이 가득 꽃혀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광경이 주는 약간의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채영은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의 좌측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 순간 커다란 손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채영은 “헉” 소리와 함께 숨을 들이마시며 손의 주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처음 쉼터에 들어올 때 봤던 남자애들 중 하나가 있었다. 그는 놀란 채영을 향해 두 손을 피며 진정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채영이 숨을 다 고르자 그는 “여기는 들어가면 안돼. 원장은 우리가 자신의 공간에 침범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해.”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채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들어가본 적 있나 보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채영이 둘러본 쉼터는 평범하기 짝이 없을 뿐더러 자신의 호기심으로 인해 은인들의 기분을 언짢게 하고 싶진 않았다. 

“애들아, 밥 먹어라.” 원장이 경쾌한 어조로 사람들을 커다란 식탁에 불러모았다. 종일 쫄쫄 굶은 채영이 차려진 밥상을 걸신들린 듯 먹기 시작했다. 반찬들의 용기에 가격이 붙어있는 것을 보아 근처 시장에서 사온 것 같았다. 하지만 채영은 배고픔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여력조차 없었다. 

“오늘 하루만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그렇긴 한데..” 말끝을 흐리며 채영이 말했다. 

“그래, 밖에 너무 오래 있으면 부모님이 걱정하실거야. 집으로 돌아가야지.”

사실 채영은 원장에게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러도 되겠느냐 물어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아와 원장은 모두 하루를 강조하였고 그녀에게 그 '하루'는 절대적인 명령이자 자신과 그들을 단절시키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채영은 그 선을 넘고자 할 용기가 없었다. 


배가 좀 차고 나서야 채영은 노아가 식탁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노아는 쉼터에 들어온 후로 방문을 닫고 방안에 있을 뿐 나오지 않았다. 채영은 부엌 한 켠에 있던 초코파이박스에서 하나를 집은 후 노아의 방으로 갔다. 

“노아, 들어가도 돼…?”

굳게 닫힌 방문 뒤로 음악소리만 흘러나올 뿐 노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채영은 한참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한 끝에 -노아가 지쳐 곯아 떨어졌나? 라고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 섰다. 예상과 달리 노아는 노래를 들으며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커다란 맨투맨티를 벗은 노아의 등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채영은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노아!” 채영의 목소리에 놀란 노아의 하얗고 가냘픈 어깨가 움찔거렸다. 

“채영아 잠깐만! 옷 갈아입는 중이야. 나가 있어!” 노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채영은 온몸을 덮은 상처에 관해 물어보려 했지만 노아의 큰소리에 잠자코 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채영은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 

몇 분 안되는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어디서, 왜, 어떻게 다친 것인지, 치료는 잘 받고 있는 것인지… 많은 걱정과 궁금증들이 채영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멍자국의 색깔을 보아 생긴 지 꽤 됐다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새벽녘 해무가 끼는 듯 했다. 

“이제 들어와.” 노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노아.. 잠든 줄 알고..” 채영이 미안함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괜찮아.. 다음부터는 노크해줘.” 

“저기..” 채영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내 몸에 있는 상처들 보고 놀랐지?” 채영이 말을 채 꺼내기도 전 노아가 끼어들었다. 

“나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잖아. 벤치나 계단에서 졸다 보면 굴러떨어질 때도 있고.. 누구랑 시비 붙어서 싸우기도 하고.. 다 그때 생긴 상처야.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그래.” 노아가 온화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밖은 그만큼 험난한 곳이야. 너도 그니까 오늘 하루만 보내고 집에 들어가.” 

“응.. 알겠어.” 채영은 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상처를 건드는 일이 될까 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밤, 채영은 노아의 옆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벤치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도 좋았지만 매트리스의 푹신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짝”

 채영은 뭔지 모를 소리에 잠을 깼다. 침대 옆 선반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엄마와 아빠에게서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어제 오전만 해도 -당장 집에 기어 들어와. 라는 문자 내용이 -어딨니. -엄마가 미안해 이제 집에 들어와. 등등 딸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채영은 약간의 성취감을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짝” 또 그 소리였다. 채영은 노아의 반응을 살폈지만 그녀는 잠에 푹 빠져 아무 소리도 못 듣는 것 같았다. 채영은 소리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 굳게 닫힌 문, 그 뒤의 원장실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문에 귀를 갖다 댔다.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원장실 문을 함부로 왜 열어 이 개새끼야” 원장의 목소리가 분노로 바들바들 떨렸다. 

“죄송합니다.” 아까 낮, 원장실 앞에서 자신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던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남자의 목소리 모두 떨렸지만 한명은 분노로, 한명은 공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짝”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채영은 그제서야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 방 들어와서 돈 훔쳐가려고 했지..?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자꾸 기어오르네? 내가 너희 안 받아주면 누가 받아줄 건데? 너희 돌아갈 곳도 없잖아.” 원장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어 말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쉼터? 거기도 고아들은 안 받아줘. 그리고 너희들 곧 있으면 성인인데 바로 쫓겨날걸? 노아 그년 봐봐. 나간 지 며칠 안돼서 돌아왔잖아. 옆에 따른 년을 끼고 오긴 했지만 내일이면 나갈 텐데 뭘.” 

채영은 문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몸이 얼어붙었다. 원장은 벗어날 수 없는 갑을관계 속에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었다. 노아의 멍자국을 본 이후로 계속하여 끼어 있던 해무가 걷혔지만 채영은 여전히 항로를 찾을 수 없었다. 계속하여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들을 뒤로한 채 채영은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가 잠자는 노아를 흔들어 깨웠다. 채영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충격과 긴장 탓에 혀가 꼬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상황을 눈치챈 노아가 채영을 꽉 안고 말했다. 

“괜찮아. 내가 곧 해결할게. 지금은 안돼. 좀만 좀만 더 있다가.” 채영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넘어갔지만 내일이면 노아가 맞을 테였다. 

“채영아, 난 돌아갈 곳이 없어. 난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고 당연히 반겨줄 가족, 친구는 더더욱 없어. 지금 도망쳐봤자 길거리에 나앉을거야. 고통스럽더라도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야 해. 채영아, 나 걱정 하지마 난 언젠간 떠날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말을 이어가는 노아의 눈이 빨개졌다. 

“하지만 넌 돌아갈 곳이 있잖아. 어서 돌아가.” 채영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혼자선 안 간다고, -다같이 나가자고 노아를 설득했다. 노아는 그런 채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가!”라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원장이 충분히 듣고도 남을 소리였다. 곧 원장실 문이 열리고 원장이 들이닥칠테였다. 채영은 현관문을 박차고 밖을 향해, 집을 향해 달렸다. 청명한 현관종 소리만이 쉼터를 감쌌다.

 



채영이 쉼터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가족이 없는 미성년자 및 청년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대가로 잔혹한 폭력을 행사한 원장은 한 시민단체에 고발되어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절대적인 갑을관계를 바탕으로 한 잔인한 범행에 모두가 치를 떨었다. 원장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내부자가 수개월 동안 쌓은 기록물들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원장실 내 텅 빈 금고가 추가로 발견됐지만 별다른 관심이 없던 경찰은 사건을 그렇게 종식했다. 한동안 온갖 메스컴들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노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채영은 바람 쐬러간다는 핑계로 잠시 집을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자 노아가 떠올랐다. 노아에게는 분명 고향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노스탤지아’에서 이름을 따오지 않았을까. 

어디선가 “야 일어나!” 노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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