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써야 할 것 같다. 글을 안 쓴 지 두 달이 넘었다. 개소리를 지껄이는 한이 있더라도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드리웠다. 그래서 생각난 게 블로그. 별 시답지 않은 소리들을 처박기 딱 좋은 이곳.
물론 남들이 말하는 '글'이라는 것을 전혀 안 쓴 건 아니다. 중간에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시나리오는 '글'보다는 인형놀이에 가까웠다. 왼쪽 4번 줄을 당기면 주인공 인형이 왼쪽 관절을 비틀며 팔을 흔든다. 나풀나풀. 인형의 목에 연결된 줄을 당긴다. (한낱 인형이어서 질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주인공이 무거운 신음 소리를 낸다. '으-아-아'
재밌지만 뭔가 부족한 인형놀이. 그게 시나리오다.
A4용지 위 여백을 채우는 직선과 곡선의 조합. 색깔은 검정, 글꼴은 나눔 명조체, 크기는 10pt.
깔끔하게 셋팅을 마무리하고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들겨본다.
인물, 갈등, 배경 다 갖다 버린다. - 기승전결 (너도 꺼지고)
나와 내 감정과 내 생각과 내 하루와 내 기분
내 주변 공기와 내 주변 소음과 내 주변 사람들과 내 주변을 배회하던 한 동네 할아버지가 여당 대통령 후보를 죽이러 갈 거라는 엄포.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주워서 담아본다.
주워 담은 글자들은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서사가 되지는 않는다. 개소리이니까.)
무엇인가를 바쁘게 하고 있다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마침내 스물-한살이지만 나름대로 계획적이다는 자위가 된다.
글 쓰는 게 좋다. 하지만 글 쓰는 걸로는 먹고 살 순 없다. 취미라고 여기기에는 나에게 글은 너무 큰 존재이다.
냉장고 속 코끼리는 무시하고 싶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가? 너무나도 좋지만 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된다 해도 굶어죽기 딱 좋다. 대한민국 성인이 사는 책은 자격증 참고서랑 공무원 문제집이 80프로. 한 권씩 사주는 도서관과 상금을 주는 출판사가 없었다면 이미 이 땅 위의 소설가들은 전부 아사했을 것이다.
각본가, 방송작가? 위에 거에 비해서는 먹고살 만하다. 둘 다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소설가는 재능과 운이 있어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각본가는 운이 따라오면 꽤 잘 될 가능성이 높은 직군이다. 연계되는 프로젝트도 많고 요즘은 전 세계가 K-콘텐츠에 푹 빠져있으니까 전망도 좋다. 그래서 요즘 시나리오를 배운다.
시나리오에서 시작해서 시나리오로 끝났다.
개소리에서 시작해서 개소리로 끝났다.
개소리에도 수미상관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