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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항의가 조용한 물길에 들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뿐인 줄 아니? 놓치는 것들은 계속해서 등장했다.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 이쪽에도. 좌우를 동시에 살필 수 없는 시야각은 왜 고안되었을까. 그때부터 그것으로 의심 없이 보이는 부분만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맹벽을 뚫고 이해 일반을 넘어서면 보이게 된다. 보이지 않음으로 보아야 하는 무언가를 생생하게.
풀색을 선명하게 닦아놓은 사각 철망이 허리께까지 엮이어 오른쪽 공간으로의 통합을 막는다. 펜스를 허리띠처럼 두른 진정한 풀색의 잡초들 사이로 황매화는 자신의 노랑을 맹렬히 내밀었다. 희끗하게 교차 배열된 밥풀 같은 꽃잎들이 손가락 마디 길이로 어긋난 채 샛노란 초여름의 위쪽으로 뒤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몫. 화면은 더 분절되어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더 연결되기 위해. 다시 위쪽으로 뒤쪽으로 짙푸른 잣나무가 우듬지마다 하늘에 대고 진한 녹색을 찔러대는 몫. 믿을 수 없는 조화에 대한 이 모든 목격을 믿고 가슴 어딘가의 불안까지 보태야 한다. 지체 없는 계절, 극단적으로 아름답게 시각화된 4단 화성을 앞에 두고 우리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할지 모른다. 정면에서, 그리고 약간 측면에서 구도를 잡아 사진으로 남긴다. 두 번째의 아라뱃길은 자꾸 멈추려 한다고 말했다.
자원 순환로라고 불리는 저 도로. 우리는 야생화 공원 정면이 닿은 도로를 지도에서 보았다. 사진 속의 구도 뒤에 보이지 않는 도로가 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도로를 왜 찾아야 했었나? 이런 물음으로 외면하고 싶을 만치 북로의 오른편 구도는 숨김없이 견고하다. 저 뒤로 도로며 야생화 공원이라니, 이 구도 외에 다른 뭐가 필요할까. 그러나 지도의 (동그라미의!) 확고한 억양에 따르면, 곧 야생화 공원이 시작된다 하므로 도로를 건너도록 안내하는 직접적인 입구거나, 적어도 이것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우회로가 나올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가 한결같이 저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야생화 공원을 이미 지나치고 있었다.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물길 위로 작은 다리를 건너고 나서도 단절은 역시나 최종적이다. 단절 너머로 이제는 골프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복할 가치가 있는 합리적인 장소는 자신만만하게 다음을 말한다. 그러나 다음이란 지금과는 무관한 것으로, 당초의 계획 또는 당시의 제안이 맴돌며 위협한들, 한시바삐 가까워지고 있는 바다에도 전혀 부합되지 않으며, 게다가 바다와 멀어지는 성공이란 바다와 원체 무관하므로, 무관한 것에 대해 포기하기를 바라게 해 달라. 이 지역은 아예 다른 방향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며, 아마도 아라뱃길 북쪽의 독정역에서 오히려 내려와야 했던 거라. 이것은 새로운 제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아이러니는 없었고,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 적 또한 없었기 때문에 해 질 녘의 바다처럼 구체적인 환영을 만들지도 않았다. 숨죽인 채 도사리는 제안은 마치 아직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