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는 핸드폰으로 정임의 하소연을 한 시간째 듣고 있었다. 대다수 원주민의 개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이 확정되어 이사 가는 집들이 생겨났다. 정임은 원주민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던 슈퍼 아줌마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재개발 주민 동의서를 받으려는 건설회사 사람들이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시위 때마다 몰려다니던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정임은 재개발 동의서에 사인한 사람들이 과반이 넘는다는 말에 배신당했다며 울분했다. 관절약을 먹어가면서 시위하는 날마다 쫓아다녔는데 헛수고가 됐다고 볼멘소리도 했다. 세라가 설거지하다 말고 물었다.
“근데, 엄마는 왜 재개발 반대야? 동네가 오래되긴 했잖아.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아? 돈 때문에 그래?”
“돈도 돈이지만,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있었던 집이잖니. 이사하면 아빠가 못 올 거 같기도 하고, 너도 없는데.”
“엄마도 참, 생각해 봐. 재개발이다 뭐다 벌써 옆 동네도 공사 중이고 거기서 날리는 흙먼지 때문에 창문도 제대로 못 열어 놓은 다면서. 그리고 밤이면 학생들이 공사장에 모여 담배 태우고 그런다며. 아빠가 이런 곳에 엄마가 남아 있는 걸 좋아하겠어?”
세라는 싱크대에 고무장갑을 탈탈 털었다. 물방울이 튀어서 얼굴에 달라붙었다. 눈에도 들어갔는지 시렸다. 정임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세라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집은 아빠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현실을 생각하면 마냥 감성적으로 볼 일은 아니었다. 빌라 옥상의 벽면에는 녹슨 물이 흘러내렸고 차가운 바람에 메마른 낙엽이 거리를 뒹구는 계절이 오면 을씨년스러웠다. 고장 난 가로등은 한 달이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았고 밤늦게 야근하고 오는 날이면 휴대폰으로 손전등을 켜고 걸어야 했다.
아빠와 함께 뛰 다니던 골목길은 밤이 되면 사라졌다. 호젓한 밤길에는 뒤따르는 발소리는 없는지 작은 소리에도 온몸의 세포가 긴장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끝없이 펼쳐진 미로 같았다. 길고양이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빌라촌에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그곳에는 아빠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정임과 통화를 마치니 한 통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채 상무였다. 그런데 서투른 맞춤법에 어눌한 인상마저 주는 이상한 조합의 문자였다. 주식이나 코인의 홍보성 스팸 문자인 줄 알고 삭제하려다 차근히 읽었다.
‘고래는나한태보내조히주니보다고래밤먼저바드거야.’
채 상무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고래 찾았어?”
다짜고짜 반말이 들렸다. 세라는 졸린 눈을 번쩍 떴다.
“지우니?”
“응. 고래는? 고래 찍었어?”
“아, 아니.”
지우는 고래를 언제 찾을 거냐며 채근했다. 지우가 뭐라 말을 하려는데 채 상무가 전화를 빼앗았다.
“유 팀장, 미안하네. 지우가 전화한 줄 몰랐어.”
“괜찮아요. 상무님.”
세라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우와의 짧은 통화가 낯선 세계의 작은 외계인과 교류하는 느낌이었다.
채 상무의 긴 숨소리가 이어졌다. 할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것 같았다.
“상무님? 하실 말씀 있으세요?”
“이렇게 통화한 김에 하나 부탁해도 될까?”
“뭔데요?”
“저기…… 내일 몇 시간만 지우 좀 봐줄 수 있겠나?”
세라는 일정표를 확인했다. 상품 발송도 어제까지 다 끝난 상태라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갈 재고만 확인하면 바쁜 일은 없었다. 세라는 흔쾌히 승낙했다.
“토요일인데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채 상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뒤이은 그녀의 한숨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우의 존재조차 세상에 알리지 않을 만큼 채 상무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세라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서울 근교 요양원에 계셔. 치매가 있으시거든. 한 달에 한 번은 가는데 지난달에는 출장도 있고 해서 못 가봤거든. 이번 주에는 유독 찾으신다고 연락이 왔는데 지우를 데려가면 어머니를 케어할 수가 없어서.”
세라는 채 상무가 온실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온 줄 알았다. 그녀의 화려한 모습과 자신감 넘치는 행동은 어느 부호의 미래를 상상하게 했었다. 휴양지의 바닷가 저택에서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낭만적인 뒷모습을.
그러나, 채 상무에게 지우뿐 아니라 치매에 걸린 어머니까지 있다는 사실에 그런 낭만은 산산이 부서졌다.
지우는 청계광장에서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스프링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힐수록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꼭대기를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채 상무는 세라에게 지우를 맡기고 차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지우는 채 상무에게 손을 흔들다가 조형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거 똥이지?”
“똥?”
세라는 토핑을 섞어놓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콘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아니. 아이스크림.”
세라는 지우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올려다봤다. 조형물의 뾰족한 끝자락에는 아기새를 닮은 새하얀 구름이 걸려있었다. 지우가 갑자기 화장실을 찾았다. 두리번거리다가 예전에 거래처와 식사한 적이 있는 근처 비즈니스 빌딩 지하로 데리고 갔다. 내부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식당들로 즐비했다. 조도가 적당히 낮아 사람들마저 차분하고 세련돼 보였다. 동남아시아의 이국적인 음식을 파는 식당가에 사람들이 몰렸다.
세라는 통행로까지 점령해 버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유리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아이와 손잡고 걷는 게 어색했지만, 보기에는 유화적이었다. 천천히 걸었다. 스쳐 지나쳤던 전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열대어를 파는 상점에서는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해 바닷속 풍경을 펼쳐 보였다. 지하 식당가는 어느새 태평양 한가운데의 심해처럼 깊이 젖어 들어갔다. 세라가 화장실 앞에서 멈췄다. 치마와 바지가 그려져 있는 갈림길에서 지우를 내려다봤다.
“너, 혼자 화장실 갈 수 있……지?”
“누나는? 내가 같이 가?”
“어?”
세라는 당황한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지우를 남자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여자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지우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 화장실을 기웃거리다가 멀찍이 떨어져 기다렸다. 계속 들고 나는 사람은 있는데 지우는 나오지 않았다. 왠지 초조했다. 채 상무의 문자가 들어왔다. 지우가 귀찮게 하지는 않냐며 그 답지 않게 미안한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세라는 그녀가 고민하다 보냈을 이모티콘을 충분히 감상할 시간도 없이 지우를 찾기 시작했다.
“지우야, 안에 있니?”
남자 화장실로 한 발자국 성큼 들어가 큰 소리로 불렀다. 바지춤을 올리며 나오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안에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세라의 얼굴은 타다만 고구마처럼 검붉어졌다. 아케이드를 한 바퀴 돌고 원위치로 돌아왔을 때 열대어 상점 앞에서 뒷짐 지고 서 있는 지우를 발견했다.
“지우야!”
지우가 세라를 쳐다보고 오라며 손짓했다. 낯을 가리는 지우는 온데간데없고 일곱 살 아이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안개처럼 그윽했다. 찾은 걸로 됐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다가도 아이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엉덩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너, 말도 안 하고 여기에 있…….”
세라가 지우에게 다가가 혼을 내려다 아이가 쳐다보고 있는 대형 스크린에 눈이 갔다. 와펜에 달린 작은 고래가 아니라 실사의 커다란 고래가 눈앞에서 아가미를 벌렸다. 순간 세라와 지우는 움찔했다. 고래의 아가미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조도가 더 낮아지면서 고래의 울음소리가 물을 가르며 유리벽을 깨고 나오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고래의 하얀 뱃길이 펼쳐졌다. 정말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와, 피노키오! 나 피노키오 된 거 같아.”
세라는 지우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럼 나는? 제페토 할아버지? 아니 할머니?”
지우의 입꼬리가 실룩거렸지만 확실하게 웃지는 않았다. 그런 건 채 상무를 닮았다.
“정말 저렇게 커?”
“나도 실제로는 못 봤어.”
“어른인데도 못 봤어?”
지우는 실망하는 눈빛이었다. 어른들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른이라고 다 알지는 못해,라는 말이 입술 근처에 맴돌았다.
“엄마는 어른이 되면 다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채 상무답지 않은 말이었다. 어른이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으니까. 그저 아이의 성화에 못 이긴 엄마가 지쳐서 하는 말처럼 들였다. 하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어른도 별 개 아니란 사실을 미리 알 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라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임의 전화였다. 캡틴이 운영하는 북촌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정임에게 주기로 해놓고 지우를 보느라 깜박 잊고 있었다.
재개발이 시작되자, 동네에는 이사 가고 남은 빈 집들은 흉물스럽게 남았다. 정임은 운동 길에 빈 집이 늘어갈수록 마음이 뒤숭숭하다고 했다. 세라는 불현듯 캡틴의 북촌 게스트하우스가 떠올랐다. 한동네에 살면서 언제까지 숨어 다닐 수도 없었다. 캡틴이 북촌에 있다는 소식에 정임을 거기서 머물게 하고 싶었다. 일이 잘되면 정임 앞에 당당하게 나타날 날을 고대하면서.
정임은 안국역에 내려 주소를 적은 종이를 펼쳤다. 2번 출구로 나가 택시를 타라는 세라의 말은 잊고 주소를 한참 봤다. 직접 찾아갈 요량으로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찾아갈지 인터넷으로 길 찾기가 어려운 정임에게는 최대 난관이었다. 택시 타라니까. 세라의 한숨 쉬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택시가 서서히 멈췄다. 기사는 정임에게 잔돈을 내어주며 손가락으로 골목 끝에 있는 한옥을 가리켰다. 정임은 결기에 찬 표정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손가방을 꼭 쥐고 미담이라고 쓰인 기와집 대문 앞에 섰다. 어젯밤 세라가 여러 번 강조한 캡틴이라는 이름을 외우고 또 외웠다.
“엄마, 거기 가서 캡틴을 찾아. 그분이 안내해 주실 거야.”
“누구? 캐, 뭐?”
“캡틴.”
“외국 사람이야?”
“아니, 선장이란 뜻이야. 짱이라고. 거기선 그분을 그렇게 불러.”
정임은 택시 안에서 캡틴이라는 말이 입에 익도록 연습했다.
정임은 삐거덕거리는 대문 소리에 멈칫했다.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남자가 흰 목장갑을 끼고 화단에서 흙 갈이를 하고 있었다. 남자가 코끝으로 흘러내린 동그란 안경을 추켜올리며 쳐다봤다.
“저, 여기 캐, 캡틴 선생님이라고 계신가요?”
정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접니다. 혹시, 세라 씨 어머니신가요?”
“네.”
캡틴은 모종삽을 바닥에 빠르게 내려놓고 목장갑을 벗었다. 정임은 남자가 캡틴이라고 하자 긴장이 풀렸다. 캡틴은 마실 것을 준비하면서 세라가 귀국한 사실을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말을 되새겼다.
며칠 후 정임이 짐가방을 가지고 게스트하우스로 왔다. 오래된 장롱이며 세간살이는 처분하고 세라 말대로 옷가지만 챙겨 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캡틴이라고 부를 때 정임은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수시로 연습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는 게 낯설어 저기요, 사장님, 하며 어정쩡한 호칭을 썼다.
정임은 모든 게 신기했다. 캡틴이라는 남자는 행동이 잽싸서 화단에서 일하다가도 투숙객이 오면 방으로 안내했다. 아침 여덟 시에 식빵을 굽고 달걀프라이에 슬라이스 치즈를 얹은 토스트를 준비하고 취향에 따라 커피나 차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도록 테이블 한쪽에 마련해 두었다.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캡틴은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정임이 봐도 일손이 부족한 터라 보다 못해 손을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제가 설거지할 테니까 다른 거 하세요.”
“아니요. 이러시면, 제가 죄송해서…….”
“그럼 오늘만 부탁드려요. 촌장님이 부친상을 당하셔서 다음 주에나 오시거든요.”
일손이 더해지자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은 조금씩 여유를 찾았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에는 숙소 안쪽은 물론이고 마당에 있는 화초의 풀내음에도 커피 향이 스며들었다. 정임은 며칠간 캡틴의 일을 도왔다. 캡틴이 커피를 내리고 정임이 삶은 달걀과 갓 구운 빵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아침 식사 준비는 끝났다. 점심때가 되면 정임은 저녁을 신청한 손님의 상차림을 위해 근처 통인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다.
세라가 일본에서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이라기에 진심으로 일을 도왔다. 손님들의 끼니를 정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투숙객들이 이모님이라고 부르며 도움을 청하거나 파란 눈의 외국인이 어눌한 한국어 실력으로 말을 걸어오면 손 발짓으로 소통하는 자신이 신기했다. 그럴 때마다 정임 자신도 이곳의 선장이 된 기분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저녁을 해결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방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정임은 화단에 심어놓은 화초나 꽃나무를 돌보는 일과 마당 안팎을 쓰는 일에 애정을 쏟았다. 낡은 빌라들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살 때를 생각하면 단독 고택에서 마당 쓰는 일은 산사의 일상처럼 꽤 고즈넉한 일에 속했다. 촌장이 오기로 한 날이 훌쩍 지났다. 캡틴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정임을 조용히 불렀다. 촌장이 부친이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노모를 돌봐야 한다며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여사님, 혹시 여기서 일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살림을 좀 맡아서 해주셨으면 해서요.”
“제가요? 여기를요? 아이고, 제가 어떻게.”
“여사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으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세라 씨 어머니라서가 아니고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촌장이 없는 동안 여사님이 도맡아서 해주신 것처럼 해주시면 됩니다. 손님들도 여사님이 가족같이 대해주신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정임은 이사한 첫날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소일거리로 돈이라도 벌면 좋겠다고 북촌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었다. 그러나 소일거리였지 전체 살림을 운영하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숙소의 살림을 책임진다는 말에 지레 겁부터 났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던 일도 그만둘 나이에 어딘가에 쓰임새가 있다는 게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 일인지 미처 몰랐다.
“세라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할 수 있지. 알바도 붙여주신다면서 그러면 괜찮지 않을까?”
“관절염도 있는데 괜히 한다고 해서 폐만 끼치는 건 아닌가 해서.”
“나는 엄마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저번에 말했잖아. 슈퍼 아줌마가 가게 하면서 돈 좀 만지니까 엄마 앞에서 유세 떤다고.”
“그랬지. 여편네가 나는 돈을 안 벌어봐서 모른다며 툭하면 지 자랑만 해댔지. 참, 근데, 그 집 딸이 갑상선 항진증인가 하는 병이 있다네.”
“정말?”
“약으로 치료한다니까 걱정은 안 한다고 하던데 그게 어디 마음이 그렇디?”
"엄마."
세라가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내가 오사카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좀 아파.”
“어디가 아픈데?”
“그게, 좀. 병원에서 건강 때문에 쉬는 게 좋겠다고 해서 한동안 무기력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사업 시작해서 잘되고 있어.”
“그러면 됐지 뭐. 요새는 다 고치니까. 근데 무슨 병인데?”
“베르, 아니 조, 로…… 증 같은 거. 그거 알아?”
“그게 뭔데?”
“빨리 늙는 병인데, 보통 사람보다 세배나 빨리 늙는대.”
세라는 이때다 싶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말을 해놓고 가슴이 뛰었다. 전화기 너머 정임의 숨소리로 반응을 감지하려 애썼다.
“뭐? 그런 병도 있니? 친구면 그럼 네 또래 아니니?”
“그렇지. 내 또래…….”
세라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쩐다니. 잘해줘라.”
정임의 목소리에서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그러니 엄마, 엄마도 분명히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거야.”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릴까 봐 핸드폰을 멀리했다.
“보람은 무슨…….”
정임은 말끝을 흐렸지만 길게 내뱉는 숨결에서 기대와 설렘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포천시 외곽으로 들어서자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었다. 흰색 그랜저와 트럭 한 대가 속도를 내고 있을 뿐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라디오에서는 가수 김현식을 추모하며 그의 노래를 흘려보냈다. 뒤이은 뉴스에서는 경기 북부 지역에 폭우가 예상된다며 침수피해 대비와 안전 운전을 당부했다.
내비게이션은 종착지까지 소요 시간이 20분 여가 남았다고 안내했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여 앞 유리창에 펼쳐진 하늘을 쳐다보았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항상 오가던 길이었다. 한낮에 어스름한 저녁 빛을 내는 건 보기 드물었다. 사이드미러에 후측방 경고등이 들어왔다. 대형 트럭이 아까보다 가까이 붙고 있었다. 그녀는 속도를 줄였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가 왔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이 따님만 찾는다며 어머니가 정신이 들었을 때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채근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머니는 정신이 들고 남의 차이가 희미해졌다. 유순한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과거의 한 장면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룸미러를 확인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대형 트럭이 시야에서 없어졌다. 우두두두두.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빗방울이 우박 소리를 내며 삽시간에 와이퍼를 움직였다. 룸밀러에 다시 트럭이 나타났다. 와이퍼의 움직임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폭우에 가까운 물 폭탄이 사이드미러 속 세상을 잠식해 버렸다. 차창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가늘게 나오던 라디오 소리가 파열음에 묻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형 트럭이 전복된 채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온몸에 힘을 실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구두의 앞코로 발가락이 쏠리면서 뼈마디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브레이크가 더 깊게 밟히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의 손톱이 커버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젖 먹던 힘까지 발끝으로 모았다. 페디큐어를 한 발톱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끝 지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감지했다. 파리 유학길에 홀로 지우를 낳았을 때도 요양병원에서 떨어지지 않는 엄마의 손을 놓고 뒤돌아섰을 때도 어느 것 하나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광화문에서 손을 흔들던 지우가 하얗게 떠올랐다. 빗속에서 솜사탕 같은 구름이 자동차 주위로 퍼져나갔다. 지우가 솜사탕을 좋아했는데……. 와이퍼가 서서히 멈추고 라디오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며칠째 비가 왔다.
장례식장 앞에는 용달차 기사가 비를 맞으며 짐칸에서 조화를 내렸다. 세라는 우산을 쓴 채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슴이 답답하고 욱신거렸다. 문자에 적힌 빈소 번호를 확인하는 손가락이 떨렸다. 로비에는 빈소 안내 스크린이 계속 돌아갔다. 고인의 이름이 그녀의 성격처럼 흐트러짐 없이 고딕체로 올라왔다.
채희주.
빈소에 들어서자 엘라화장품의 회장이 보낸 대형근조화환이 위엄 있게 서 있었다. 거래처에서 온 수십 개의 조화가 양 갈래로 꽃길을 만들었다. 영정사진 속의 채 상무는 포니테일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금방이라도 회의를 하자며 팀원들을 불러 모을 것만 같았다.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지우가 검은색 두 줄 완장을 차고 있었다. 문상객을 맞는 건 지우와 옆에 있는 노인이었다. 노인의 표정에는 침울하거나 그늘진 표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눈빛은 그저 허공을 맴돌았고 인사하는 로봇같이 문상객에게 허리를 굽히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 웃지 마. 나는 슬퍼.”
지우가 노인을 보고 말했다.
세라는 지우의 손에서 장난감을 거두고 깊게 안아주었다. 지우도 가만히 받아들였다. 지나간 눈물 자국만 보일 뿐 지우는 울지 않았다. 헌화가 부족하면 엄마 꽃이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울면서 엄마를 찾지도 졸린 눈을 비비며 꾸벅꾸벅 졸지도 않았다. 손에 든 장난감이 오른쪽에 찬 완장만큼이나 무겁고 고달프게 보였다. 마치 손에 든 장난감이 지우를 지탱하게 하는 생존 도구처럼 느껴졌다.
“팀장님, 여기요.”
빈소 옆에 차려진 식당에서 김선형이 세라를 불렀다. 그의 앞에 앉은 오수아가 반쯤 일어서서 인사했다. 세라는 눈가를 훔치고 그들과 합석했다. 오수아의 목소리는 장례식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밝았다. 목소리도 조명처럼 조도를 낮출 수 있다면 가장 낮게 돌려놓고 싶었다. 오수아는 반가워하면서도 관심은 다른 데에 있는 것처럼 세라의 표정과 몸짓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탐색했다. 김선형이 코을 훌쩍이며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주었다. 화장품 사업은 잘되는지도 물었다. 채 상무에게 들은 것 같았다. 그는 맥주와 소주를 들어 보이며 어떤 걸 먹을지 세라에게 무언으로 눈짓했다. 세라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
“상무님이 팀장님 칭찬을 얼마나 하던지 본받으라고 하더라고요. 자기의 길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거라고……. 그랬는데, 어쩌다.”
오수아는 승진 발표 시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건 승진에 불만을 표시하지 말든가 아니면 나가라는 말 아니겠냐며 입을 삐죽거렸다. 김선형은 침울한 얼굴로 맥주를 들이켰다.
“수아 씨, 여기서 할 얘긴 아닌 것 같아.”
세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오수아는 김선형이 그만하라며 툭 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라에게 일이 힘드냐며 얼굴이 피곤해 보이고 예전과 좀 달라졌다고 노골적으로 평했다. 세라는 당황했지만 평정해지려 애썼다. 주먹 쥔 손을 무릎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때마침 김선형이 나섰다.
“사업이 쉬운 줄 알아? 우리처럼 시키는 대로 일하면서 월급 받는 그런 클래스가 아니라고 이 사람아.”
오수아는 듣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팀장님, 상무님한테 아이가 있는 거 아셨어요?”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 우연히.”
세라는 지우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오수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영업부에서 들은 얘기라며 작은 목소리로 채 상무의 신상을 늘어놓았다. 세라는 듣기가 불편해 식당으로 막 들어온 가온의 사장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늦게 퇴근한 사람들이 빈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식당을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김선형은 세라에게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악수를 청했다. 세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뒤따라오던 오수아에게 몸을 돌렸다.
“수아 씨, 아까 나한테 예전과 어딘가 달라졌다고 물었지. 맞아. 나 좀 아파. 근데 그것 빼고는 아주 좋은 상태야. 사업도 잘되고 친구도 생기고 날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많아. 아파보니까 알겠더라. 아파도, 좋은 일 기쁜 일은 항상 생겨. 세상이 끝난 게 아니더라고.”
세라는 그들과 헤어지고 빈소로 가 지우를 다시 찾았다. 지우는 아까와는 달리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막 지우에게 다가가려는데 친지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지우를 다그쳤다.
“어머, 이게 뭐야. 지우 너 오줌 쌌니?”
바닥에 묻어난 물기는 지우의 바지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라는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보다가 당황하는 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그런 지우에게 어린아이처럼 놀리기 시작했다.
“오줌싸개야.”
지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문상객에게 맞절까지 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던 지우가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작은 몸에 웅덩이처럼 고였던 물이 흘렀다. 세라는 지우의 목청 밖으로 터져 나온 울음이 엄마의 자궁 속에서 웅크리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울음처럼 들렸다. '차라리 울어.'
“지우야. 괜찮아.”
세라는 지우 곁으로 가서 눈물을 훔쳐주었다. 중년 여자가 어디선가 여벌의 옷을 가져와 지우 앞에 내려놓고 다른 문상객을 상대하러 식당으로 갔다. 노인은 말없이 지우를 힐끔거렸고 오줌싸개라며 혼자 키득거렸다. 지우는 옷을 쳐다보기만 했다.
“누나가 도와줄까?”
지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소리 없는 곡성이 뒤통수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노인의 굽은 등위로 보이는 채 상무의 영정사진과 문상객에게 맞절하는 지우의 작은 움직임이 세라의 눈 속에 멍울졌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빗줄기가 해무처럼 흩날렸다. 우산을 접고 바닥을 짚으며 걸었다.
고장 난 가로등은 주변 빌라의 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기대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세라의 옆으로 희미하게 섰다. 마지막 가로등의 턱 밑에는 커다란 거미줄이 한 판의 피자처럼 걸려있었다. 거미줄에 걸려있는 작은 벌레들과 빗방울이 전구의 불빛에 반짝거렸다. 호기심이 많은 지우가 거미줄을 봤더라면 아마 손가락으로 빙빙 돌려가며 작은 벌레를 풀어준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지우는 아버지를 잃고 사람들의 시선을 무서워하던 자신과는 달랐다. 이제 가족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뿐이라는 걸 아는 듯이 엄마 앞을 지켰다. 세라는 지우의 바짓가랑이 사이에 흐르던 뜨거운 눈물이 손에 닿았을 때, 아이와 무한의 세계로 연결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지우를 안았을 때 작은 가슴이 파르르 떨었다.
그게 심장이었을까.
작은 심장이 몸속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았다.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따뜻했다. 열대어 상점 앞에서 어른이면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던 지우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이면 다 할 수 있을 거야.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까. 세라는 지우를 안았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정임은 세라와 별다른 용건 없이 통화할 때도 마지막에는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딸 같은 아이가 빨리 늙는 병에 걸렸다니 드라마에나 나오는 얘기 아니냐며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근데 그 아프다는 친구는 머리가 많이 빠졌다며 내가 말 한 검은콩 좀 먹으라고 하지.”
“어, 어……. 말했지.”
“그리고 모자 같은 거 쓰면 안 된다고 해. 머리카락이 빠지면 숨구멍을 열어놔야지.”
어느새 그녀는 안쓰러움과 측은한 감정이 둑에서 물이 새듯 흘러나와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었다. 세라는 의식적으로 정임이 병에 대해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어. 하는 일도 잘되고. 엄마, 아프다고 다 슬픈 일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래 뭐, 항상 나쁘기만 하겠니. 안타까워서 그렇지.”
“만일 엄마가 그런 병에 걸렸으면 어떨 것 같아?”
“내가? 지금 같아선, 그래도 살아내야 하지 않겠니?”
“지금 같아선? 지금은 어떤데?”
“내가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내가 여기서 일을 좀 잘하거든. 손님들도 캡틴 사장님도 날 어찌나 칭찬하는지.”
정임의 말속에 전에 없던 기세가 느껴졌다.
“그래? 정말 엄마한테 맞는 일을 찾았나 봐. 잘됐다.”
세라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정임의 목소리에서 활기찬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정임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온전히 보람과 기쁨만을 얻기 위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젊은 사람들한테나 가능한 기회일 뿐 칠순을 바라보는 세월을 살면서도 제대로 된 직업 한 번 가져보지 못한 그녀에겐 허황한 꿈같은 일이었다.
마트에서 식당에서 일용직을 전전긍긍하며 험한 꼴을 겪던 날들이 굳은살처럼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소소하게 사람을 사귀는 일에도 돈이 필요했고 그래야 사람 사는 인생의 작은 맛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걸 채워주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받으며 일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재래시장에서 건강을 생각하며 재료를 고르고 손님의 잠자리를 봐주고 마당을 쓸고 정원을 가꾸는 일이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최고의 권리이자 책임이었다.
“근데 넌 언제 올 거야? 벌써 몇 년이니. 한 번 오지도 않고.”
세라의 침묵이 이어지고, 정임이 재차 물었다.
“응? 언제 올 거냐고. 우리 딸 얼굴 잊어버리겠어. 아니면 내가 갈까?”
“아니, 나 이제 곧 들어가…….”
“그래? 정말이니? 왜 말 안 했어.”
정임은 세라가 곧 귀국한다는 얘길 듣고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할 일이 하나둘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우선 부동산 최 씨에게 전화해서 함께 지낼 월세라도 알아볼 셈이었다. 핸드폰으로 최 씨의 전화번호를 찾으면서 얼마 전 마트에서 할인 행사 할 때 소고기라도 사놓을 걸 후회했다.
세라는 얼떨결에 내뱉은 말이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정임 앞에 나서기로 했다. 화장품 사업이 잘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대로라면 한 가족이 먹고사는 데 걱정 없을 테고 엄마는 지금의 일을 즐기면서 하겠지. 멀게 돌아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사막의 소용돌이 속에서 탄탄한 평야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강호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여전히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출장이 잦았고 어느새 과장이라는 타이틀도 갖게 되었다. 그가 출장 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살 게 있냐며 톡 방에 올리면 영지는 화장품과 향수를 매번 구매했고 세라는 잘 다녀오라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강호는 출장에서 돌아오면 지역의 특산물이나 건강식품을 세라에게 따로 챙겨 보냈다. 이번에는 환으로 된 노니와 상황버섯을 상자에 넣어 붙였다. 달여 먹는 방법이 적힌 안내문도 함께 동봉했다. 세라는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은 소분해서 정임이 먹을 수 있도록 게스트하우스로 보냈다. 서울과 오사카를 오가던 캡틴은 고베에도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게 되어 일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는 동안 북촌 게스트하우스는 정임이 전임하게 되었다.
시간은 아름답게 영글어 가을의 끝자락에 머물렀다. 길가에 은행나무는 아직 노란빛을 머금은 은행잎을 스르르 바닥에 흩뿌렸다. 세라는 병원에 들러 정 박사에게 처방전을 받았다. 노란색으로 물든 가로수길을 걸으며 강호와 함께 갔던 홍천의 은행나무 숲을 떠올렸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발버둥 치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강호와 아이를 낳고 결혼이라는 걸 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바람이 불었다. 바닥에 쌓인 낙엽을 공중으로 날리더니 둥글게 모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다시는 오지 않을 먼 곳으로 세라 곁에서 멀어져 갔다.
지우의 문자가 온 건 세라가 안국역에서 내려 북촌 방향의 출구를 찾고 있을 때였다. 지우의 핸드폰 번호였지만, 문자 내용은 지우 할머니가 쓴 것이었다. 잠시 정신이 온전해졌을 때 할머니를 대신해 요양보호사가 보낸 것이다. 가끔 묻어나는 채 상무에 대한 그리움과 이러한 불행을 감당해 줄 친지 하나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군데군데 묻어났다. 지우가 내성적이라 말이 별로 없고 낯가림도 심해서 긴장하면 바지에 오줌도 지린다고. 어린 아이니 간혹 떼를 쓰거나 힘들게 하면 너그럽게 봐 달라는 부탁의 말도 있었다. 할머니가 알고 있는 지우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고래를 좋아하고 공중화장실에 혼자 가는 용기도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세라는 자신만 아는 지우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에 지우와의 연결고리가 더 확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우의 후견인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지우 할머니의 끝인사를 읽은 후 세라는 모든 게 선명해졌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미담이라고 적힌 게스트하우스 앞에 섰다. 세라는 깊게 눌러쓴 모자를 벗고 머리를 손가락 빗질로 가다듬었다. 멀티 밤으로 얼굴의 주름진 부분에 과하지 않게 펴 바르고 립글로스로 마무리했다. 옷매무새도 점검했다. 걷어 올린 한쪽 소매를 단정하게 내렸다. 끈이 헐거워진 운동화를 동여매고 꺾어 신은 티가 나지 않도록 뒷굽을 빳빳하게 올렸다. 나무 대문을 천천히 밀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했다. 서까래에 걸려있는 새장 속에 새소리만 손님을 반겼다. 마당은 빗자루로 쓸어냈는지 낙엽 하나 뒹굴지 않고 깨끗했다.
“실례합니다.”
세라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누군가 나오길 기다렸다. 네, 잠시만요. 마당 정원에서 쪼그려 앉아 화분을 고르던 여자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세라의 눈에 보인 뒷모습은 영락없는 정임이었다. 검은색 파마머리는 새치 하나 보이질 않았다. 살이 내렸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 앞치마를 하지 않던 정임이 옥색의 긴 앞치마를 한 모양이 정갈하고 품위가 있었다.
“예약하셨어요?”
정임은 모자를 쓴 세라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
엄마라는 소리에 정임의 눈동자가 커졌다. 잠시 말이 사라진 동안 정임의 손이 세라를 먼저 반겼다. 세라의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반가움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너, 말도 없이……. 오, 오늘 온다는 얘기는 안 했잖아.”
정임은 가슴이 뛰었다.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세라를 잡아당기며 대청마루에 앉혔다. 세라의 몸을 구석구석 만졌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팔다리는 제대로 있는지 손가락은 다섯 개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정임은 안심했는지 그제야 얼굴에 함박웃음을 내보였다. 주방으로 들어가 다과를 내오고 세라 손에 따뜻한 녹차를 건넸다.
세라는 녹차를 쟁반에 내려놓고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엄……마. 정임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눈을 마주쳤다. 정임도 세라의 얼굴을 빤히 보다 듬성드뭇한 머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눈을 피해버렸다. 더는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우리 딸 고생했어. 고생했네.”
그녀는 세라의 어깨를 무겁게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내가 모자 쓰지 말라고 했잖아. 머리에도 숨구멍이 있다고.”
정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미안해, 엄마.”
세라는 정임과 부둥켜안고 한참을 있었다.
시간이 멈추고 세상도 멈췄다. 새장의 새소리도, 대문 밖으로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도, 숙박 손님의 인기척도 모두 사라진 순간이었다. 다만 세라는 정임의 가슴이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먼저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구도 먼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세라는 처음에 도경이 자신을 모델로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했을 때 빈말이라도 고마웠다. 변해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진실한 마음은 한 장의 사진처럼 세라의 가슴에 와닿았다. 그 후 아무 얘기도 없던 도경은 전시회 일정이라며 초대장을 내밀었다.
“정말요? 전시회를요? 그동안 아무 말 없었잖아요.”
“내가 선물한다고 했었잖아요. 잊었어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때 얘기했으면 됐지 뭘 자꾸 얘기합니까.”
도경은 쑥스러워하며 세라가 잊고 있었다는 것을 서운해했다. 세라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색내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는 건 그의 타고난 천성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초대장을 꺼냈다.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고 정임에게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지난 일들을 되돌아봤다. 숨겨두었던 두려운 마음은 서서히 밖으로 녹아 내려갔다. 도경의 눈빛과 행동, 태도는 과거와 현재의 세라, 두 모습의 괴리를 잊게 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세라는 망설이다 강호와 영지에게 모바일 초대장을 보냈다.
인사동 갤러리아트 정문에는 화려한 오브제 화환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약간의 빗방울이 맺혀 싱그러운 자태를 뽐냈다. 세라는 보라색 우산을 돌돌 말아 한쪽 팔에 끼고 가져온 꽃다발을 매만졌다. 사진 속 모델이 작가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왠지 어색했다. 갤러리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감상하고 있었다. 도경은 보이지 않았다. 세라는 주문을 외듯 잠시 눈을 감고 섰다가 바닥에 표시된 관람 순서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세라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흰 벽면을 수놓았다. 월정해변을 거닐다가 찍힌 사진은 그녀가 피사체라기보다 멀리 수평선 위로 지나가는 배 한 척을 담으려는 작가의 마음이 엿보였다. 세라는 사각 프레임 한구석에서 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경이 까칠한 말투로 비키라고 손짓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둘만이 아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콧잔등이 주름졌다. 캡틴의 카페에서 여행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었던 일도, 라멘 집에서 일을 마치고 도톤보리 다리에서 강가를 내려다보던 일상도, 그날의 기억 모두 아늑한 조명 아래 반짝였다. 갈 곳을 잃고 울고 있던 작은 아이에게 손을 내어준 사람들, 젊은 날을 세라에게 투영한 요시메의 안타까운 시간, 그들과 함께한 살아 움직이는 공간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게스트하우스 옥상으로 내려앉은 푸른 어둠 속에 비친 달빛이 또렷하게 그려졌다.
“그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그죠?”
언제 왔는지 도경이 옆에 와 섰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세라는 대답 대신 얼른 눈물을 훔쳤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세라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섰다. 사진을 비춘 조명 빛이 어느새 세상의 빛으로 번져 보였다. 그 빛으로 작은 문 하나가 열리고 그를 통과하면 방대한 공간이 눈앞에서 펼쳐져 낯선 공간에서의 고요가 황홀할 지경이었다. 적막을 깨고 누군가 세라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가 뒤돌아서자 영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세라는 자신이 꽃다발을 받는 게 무안해서 도경을 쳐다봤다. 도경은 괜찮다며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한 발자국 뒤에 선 강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지는 얘기 많이 들었다며 도경에게 간단한 인사만 하고 전시된 사진을 둘러봤다. 전시 공간을 도는 내내 도경과 세라를 힐긋 쳐다보며 레이더망을 움직였다. 손님이 찾아와 도경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영지는 혼자 남은 세라 곁으로 가려다 멈췄다. 강호가 세라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사진 좋은데. 하도경 씨가 신경 많이 썼네.”
“고마워.”
“건강은 좀 어떠니?”
그의 눈빛이 한결 가벼웠다.
“보시다시피, 좋아.”
세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강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제야 유세라 같네.”
강호가 예전처럼 세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렇게 머리 만지면 곤란해. 이제 엉키거든.”
세라가 웃으며 농담처럼 건넨 말에 강호는 코끝이 시렸다.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는 게 얼마만 인지 몰랐다. 가슴속에 맴도는 말을 뒤로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지가 끼어들었다. 노화를 지연시켜 주는 화장품이 새로 나왔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세라는 그런 영지가 밉지 않았다. 불운이라는 허울도 왜 나여야만 하느냐는 거친 한탄도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특별한 게 많아지다 보면 오히려 평범해지는 것처럼 세라의 삶도 보통의 하루, 보통의 일주일, 그렇게 보통의 한 달이 되어갔다.
갤러리 폐관 시간이 다가왔다. 강호는 도경에게 축하의 인사와 감상을 짤막하게 전했다. 시간이 괜찮으면 나중에 따로 봤으면 좋겠다고 명함을 건넸다. 도경의 표정은 당당했고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강호와 영지는 안국역으로 걸어갔다. 세라는 문밖에서 그들을 배웅하며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간혹 뒤돌아 손을 흔드는 발랄한 영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영지가 강호의 팔짱을 끼는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세라는 북촌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도경이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틈만 나면 사진을 찍는 탓에 걸음이 더뎌졌다. 북촌의 한옥들, 전기상대에 앉아 있는 새들, 기다란 가로등 그리고 집 사이에 작은 텃밭들, 여태껏 소소한 풍경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하늘과 구름은 천천히 흘렀으며 쌀쌀해진 공기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내음으로 콧방울을 자극했다. 이끼가 한가득 낀 높은 돌담길을 지나 전깃줄이 주택의 지붕까지 내려앉은 골목을 지나면 게스트하우스가 나왔다.
세라는 정임의 손때가 묻은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뒤따라오는 도경을 기다렸다. 도경은 카메라 렌즈의 덮개를 닫고 고래 와펜이 정면으로 보이게 카메라 끈을 조절했다.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세라는 그를 몇 년을 봐왔지만, 머리 모양에 그리 신경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꽁지머리는 그의 정체성처럼 일관되었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핸드폰을 들고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간판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했다. 넥워머를 한 여자가 대문 앞에서 두 사람에게 먼저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도경이 옆으로 비켜서고 그들은 조심스레 대문을 열었다. 나무의 삐거덕거리는 소리 끝에 그들을 맞이한 건 너른 마당이었다. 마당은 흙바닥에 뒹굴던 낙엽들이 빗물을 머금고 달라붙어 있었다. 정임은 비질하며 뒤늦은 가을을 쓸어 담았다. 옥색의 앞치마를 길게 두르고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았다. 뒤이어 들어온 세라를 보기도 전에 숙소로 안내했다. 세라는 정임이 한쪽으로 비켜둔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마저 쓸었다.
정임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서둘러 마당으로 나왔다. 두 사람을 발견한 정임은 여행자를 보던 눈빛과는 다른 환희에 뒤덮인 표정을 지었다. 세라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도경을 떠나질 않았다. 도경의 얼굴이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처럼 붉어졌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만 했지, 자신이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어 삽시간에 주목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어색한 시간은 또 다른 여행자들의 방문으로 바쁘게 돌아갔다. 세라는 정임을 도와 손님을 사랑채로 안내하고 정임은 안채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도경은 툇마루에 앉아 네모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물기를 머금은 향내가 진동했다. 화단에 피고 진 가을 동백나무의 분홍색 꽃잎이 바람에 춤을 추고 한숨 돌리던 나무 대문이 활짝 열렸다.
남자아이가 가방을 메고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도경과 남자아이는 서로의 존재를 탐색하듯 조용히 바라봤다. 아이는 곧 얌전해져 툇마루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가 싶더니 주머니에서 딱지를 꺼냈다. 계속 딴청을 부리다 결국 도경의 카메라로 시선을 옮겼다.
네가 지우구나.
도경은 세라에게 들은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카메라를 아이에게 들이밀며 만져봐도 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도경의 눈치를 보다가 카메라를 얼굴에 가까이 갔다 댔다. 카메라 줄에 달린 고래 와펜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도경을 쳐다봤다. 나무 대문이 바람 소리에 노래하듯 조금씩 흔들거렸다. 담장 너머로 북촌의 바람이 하늘빛으로 넘나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