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독서와 글쓰기 목표 중의 하나로, 분석심리학자 융의 저작을 차례차례 읽어나가며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오늘은 이 문장이 마음에 와서 꽂혔다.
"신경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이익을 주었다."
그가 말하는 신경증 환자는 평소 매우 지적이며 합리적 사고방식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자기가 암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실은 나도, 오래전에 그랬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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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 20년 전 이제 막 돌 지난 큰 아이를 친정 엄마와 회사 어린이집에 번갈아 가며 맡기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던 때였다. (당시의 내 생각으로는) 아주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 정말 너무 피곤해서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갑상선 암 증상과 어딘가 흡사한 것 같았다. 내가 혹시 암? 걱정이 되어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2. 회사를 관두고 아이가 둘이 된 어느 날, 기침이 몇 달 동안이나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감기약도 소용이 없었다. 혹시 폐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폐결핵? 아니면 폐암? 온갖 걱정이 들기 시작해, 또 큰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아무 이상 없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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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병으로 진단되지 않았지만, 병적 증세가 있었으므로 신경증까지는 아니어도 신경성인 것은 맞았을 것 같다. 그런데 신경증이 이익을 준다고?
1번 사례 갑상선 암인가 의심하다가 아닌 걸 알고 난 후, 나는 갑작스레 회사를 관뒀다. 그러니 신경증이 안겨준다는 건, 분명 금전적 이익은 아닐 것이다! 대신 매일 아침,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이나 친정 엄마에게 맡기며 시달리던 마음의 가책에서 벗어났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큰 아이를 조산해서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아직 어리고 약한 (실제로 그때도 큰 아이는 여전히 폐가 약해 감기와 폐렴을 번갈아가며 앓았다)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일이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특별히 힘들었던 일이었을지 모른다.
2번 사례 이유 없는 기침 이후로 내게 온 이익도 지금 막 머리를 쥐어짜서 생각해 본다. 그랬더니 그때 이미 돌도 훨씬 지난 둘째에게 하던 모유 수유를 중단한 일이 떠오른다. 회사를 관두고 집에 있게 되자 나는 본격적으로 온갖 육아 정보를 섭렵했다. 그러면서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하는 큰 아이에게는 못했던, 모든 육아책에서 좋다고 강조하는 모유 수유를 둘째에게는 아주 실~컷 했다. 그러면서 돌이 훨씬 지나 이제 거의 밥을 먹어도 될 지경의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면서, 아직 아기가 모유에 집착해서 떼기 어렵다고 믿었다. 그러나 둘째는 젖떼기를 시도한 지 며칠 만에 아주 쉽게 젖을 뗐다. 집착은 아기가 아니라 내게 있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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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사례만 적었지만, 이보다 덜 인상적인 사소한 신경성 시달림은 아마 더 많을 것 같다. 융은 이런 증상들이 의식적 자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의식적 관념들의 작용이라고 말한다. 교육받은 의식은 합리성으로 인격을 조각낸다. 그러나 인간은 전체성을 향해가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그 조각들 사이를 메꾸려고 한다. 그게 잘 안될 때, 융에 따르면 특히 나처럼 특정한 종교나 권위에 전적으로 의탁하지 못하는 경향의 사람들은, 그 틈을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에 나는, 올해 융의 저작을 정리하는 목표를 두었다고 말했다. 그건 의식이 정했다. 그러나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왜 하필 융을 선택했는가에 대해서는, 나의 합리적인 의식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특별한 증상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건 없지만, 아마 여전히 내게는 해결하고 싶은 심리적 갈등이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또 라깡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모든 정상인은 신경증자라고도 말했다. 그건 갈등 속에 서성이는 우리 모두가 비정상이라기보다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든 잘 살아내기 위해서 의식과 무의식이 협력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러니 융을 읽고 쓰도록 내게 작용하는 알 수 없는 힘도, 또 발견되거나 발견되지 못한 나의 신경증들도, 모두 내 곁의 고마운 벗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