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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Jun 22. 2024

꿈속 친구에게


아주 오래전에 잠깐 친했다가, 어느새 잊혀버린 친구(라, 말할 수 있을까?)가 있다. 잠시 친하게 지내던 그때에만 만났을 뿐, 그 이후에는 만난 적도 없고 평소에 그 친구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런 사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 몇 년 사이, 그 친구가 가끔 꿈에 등장한다. 그래서 일 년에 두어 번쯤, 꿈 덕분에 잊고 있던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며칠 전, 또 그 친구를 꿈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그냥 지나쳐버리기가 왠지 아쉽다. 그래서 지난 이 년여간 틈틈이 기록했던 꿈을 뒤적거려 보았다. 꿈 속이지만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났으며, 그 친구를 만났을 때 꿈속의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해졌다.


*


꿈 1.


꿈속의 나는 담배가게 주인이다. 친구가 담배를 사러 왔는데,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달라고 한다. 친구와 마주 서서 오른쪽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뜯지도 않은 돈 봉투가 나온다. 친구는 그걸 내게 주고, 꿈속의 나는 이걸 다 주는 거냐고 물으며 웃는다. 친구의 주머니 속에서는 담배 세 개비가 남은 담뱃갑도 있다. 꿈속의 나는 찬장 속 담배를 친구 가방에 넣어주려고 이번에는 친구의 가방을 뒤적거린다.


그러다가 가방 주머니 속에서 외국돈을 발견한다. 친구는 외국에 다녀왔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친구를 부르는데, 친구는 대답하지 않고 내 앞에 숨는다. 그러나 친구는 결국 발견되고, 어딘가로 취재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친구는 이번 주말에는 꼭 쉬게 해달라고 그에게 애절하게 말한다. 그걸 보던 꿈속의 나는, 친구가 그동안 왜 오지 못했는지, 우리가 왜 멀어졌는지 이해한다. (2022.10.9)

   

*


꿈 2.


교실 혹은 사무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회식 장소인 '만두왕'을 찾아가야 한다. 오른쪽 문으로 나가는 친구를 따라 나가보니 매우 가파른 빙판의 내리막길이 있다.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워 그쪽으로는 갈 수 없을 것 같다. 꿈속의 나는 두툼한 털양말과 신발을 찾아 신고, 다른 쪽 앞문을 향한다. 앞쪽으로도 빙판의 내리막 길이긴 하지만, 아까 보다 경사가 덜하다. 게다가 신발인 줄 알았는데, 스키를 신고 있어서 S자로 속도를 조절하며 내려갈 수 있다.


나는 남편의 지도를 보고 '만두왕'을 찾아 들어간다. 사람들이 이름의 '가나다' 순으로 줄지어 서 있다. 나는 이름이 'ㄱ'으로 시작하기에 앞 줄에 설 수 있지만, 그냥 다른 곳 뒤쪽에 줄을 선다. (2023. 5. 8)


* 


꿈 3.


계단 위에 친구가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고 보니, 친구는 애인과 함께다. 꿈속의 나는 얼굴을 마스크와 모자로 가리고, 다른 길로 돌아간다. 가는 중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태연하게 전화를 받고 싶었는데, 전화를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빨리 받아버렸다. 전화기 속에서 친구가, 왜 그냥 지나갔는지 묻는다. 꿈속의 나는 '무슨 소리야?'라며 어색하게 발뺌한다. (2023.5.21)

 

*


꿈 4.


친구가 자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하려고, 꿈속의 나에게 짐을 들게 한다. 짐은 매우 가볍다. 머리카락의 상태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 두 가지 종류의 샴푸(혹은 린스)다. 하나는 염색한 머리용, 다른 하나는 고운 머리용. 꿈속의 나는 그것들을 들고 따라가면서, 친구가 유명한 언론인과 만나고 어려운 과제도 해결했다는 소문을 떠올린다. 이런 친구가 내게 있고 때때로 나를 찾아와 주다니, 참 좋구나 생각한다.  (2024. 1. 31)


*


꿈 5.


친구와 함께 걷는데,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이 보인다. 나는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두툼한 뭔가를 (책 혹은 장부?) 친구의 가방 속에 밀어 넣는다. (2024. 6. 19)


*


뒤죽박죽인 것만 같은 다섯 개의 꿈을 나란히 써 놓고 보니, 이 꿈속 친구와 나는 언제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진 못하고 조금 거리가 있지만, 서로의 비밀을 알면서 지켜줄 만큼 믿음직하고도 가까운 사이인 것 같기는 하다. 꿈속에라도 이런 친구가 있어 좋은 건가, 아니면 꿈속에서만 이런 친구가 있어 서글퍼야 하나. 아무튼,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담배 가게 주인으로서의 나와 회식장소라는 '만두왕'은, 큰 웃음이 난다. 꿈속에서만 만나는 친구여, 언젠가 우리 '만두왕'에서 꼭 만나, 마음 편히 회식 한 번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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