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321~324
얼굴은 그 자체로 잉여다... 한 심리학자는 얼굴은 "형식도 없고 차원도 없는 모호한 광도의 다양한 변화"로부터 결정화되는 시각적 지각물이라 말했다. 암시적인 흰 빛, 포획하는 구멍, 얼굴.
Le visage est lui-même redondance... Un psychologue disait que le visage est un percept visuel qui se cristallise à partir «des diverses variétés de luminosités vagues, sans forme ni dimemsion». Suggestive blancheur, trou capturant, visage.
남자 형제도 없고 중고등학교를 여학교만 다니던 나는 대학에 가서야, 남학생들을 일상적으로 만났는데 그때 내가 기이하게 여겼던 것은, 남학생들이 진짜 예쁜 여학생보다 여성스럽게 꾸며서 예쁜 척하는 (그 당시 속된 말로) '여시 같은' 여학생들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들뢰즈-가타리의 말대로 얼굴이라는 게 실은 모호한 것이라면, 얼굴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종합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욕망이 투여된 시각적 지각물에 불과하다면, 그 옛날 내가 비웃었던 남학생들의 판단(?)이 맞았던 것이리라. 게다가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진짜 예쁘다는 것도 그저 눈의 크기, 코의 높고 낮음, 입술의 모양 같은 것이었을 텐데, 그마저도 아마 백인-여성의 얼굴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오래 전 남학생들을 비웃던 나는, 예전에도 '장동건'보다 '이병헌'을 좋아했고, 지금도 '차은우'보다 '박정민'에 열광한다. 마침 얼마 전에 '박정민'이 주연으로 나오는 '얼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박정민'의 연기도 좋았지만, 우리가 밉다-곱다 판단하는 '얼굴'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 다시 묻게 되는 영화다. 인간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본다면, (예컨대 귀 하나를 아주 크게 확대해서 오래 들여다보라!) 실상 모두 기괴하고 낯설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