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빵이에요. 자고 일어나 바로 빵을 먹는 일은 겨울 바다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에요. 엄마는 지난 주말에 체험농장에서 만들어 온 블루베리잼과 마트에서 사 온 딸기잼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어요.
나는 가만히 식탁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어요. 그런데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고민할 사이도 없이 엄마가 말했어요.
“우리 서희 빵 싫으면 시리얼 줄까?”
나는 더 이상 어떤 잼을 발라 먹을지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지요. 엄마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꺼내고 오빠가 좋아하는 스펀지밥 그림이 그려진 노란 그릇에 시리얼을 담고 우유를 부어주었어요. 조금 더 잠이 깨면 먹으려고 기다리는데 이번에도 엄마가 내 숟가락을 먼저 들었어요.
“엄마가 먹여 줄까?”
‘아니’라고 말하려고 입을 벌리자마자 우유와 바삭한 시리얼이 한입 가득 찼어요. 달콤한 시리얼과 차가운 우유가 까만 모래로 가득한 동굴을 비집고 들어온 것 같았지만 더 깊은 동굴 속에는 밤새 굶주린 친구들이 살고 있어서 혀를 이리저리 굴려 안으로, 안으로 더 밀어 넣었어요. 그 사이 엄마는 분홍색 티셔츠를 골랐다가 다시 인어공주가 그려진 주황색 티셔츠를 골라 내 머리에 씌우더니 숟가락을 집으려고 했던 내 팔을 들어 올려 티셔츠 구멍 중 제일 작은 두 개의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어요.
나는 자꾸자꾸 기분이 나빠졌어요. 엄마가 나에게 해 주는 모든 것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엄마는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시리얼을 몇 번 더 동굴 속으로 밀어 넣는 동안 엄마는 딸기 모양 분무기를 가져와 내 머리에 칙칙 뿌리고 빗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숟가락에는 우유도 있고 시리얼도 있는데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니까 제대로 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 모습을 본 엄마는 한쪽 머리를 묶고 나서 숟가락을 집더니 다시 내 입속으로 시리얼을 넣었어요. 그리고 나서 나머지 한쪽 머리를 묶었어요. 아직 스펀지밥 그릇에는 시리얼이 남아 있었지만 엄마는 내가 앉은 의자를 뒤로 뺐어요.
“서희야, 이제 양치질해야지. 어서 일어나 욕실로 가자.”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욕실로 들어갔어요. 내 칫솔에 치약을 짜준 엄마는 화장대로 가서 머리를 묶고 오더니 내 입속에 있던 칫솔을 빼서 동굴 속 바위들을 닦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나의 작고 하얀 바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1학년이지만 엄마가 학교에 늘 데려다주고 데리러 와요. 학교에 입학 후 친구들이 물었어요.
“서희는 왜 엄마가 데려다줘요?”
“응, 서희도 혼자 다닐 수 있어.”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했어요. 나도 혼자 학교에 갈 수 있는데 엄마는 늘 내 옆에 있었지요. 어느 날은 더 이상 엄마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혼자 뛰어가 봤어요. 그런데 엄마는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어요. 아마 내가 못 보는 줄 알았나 봐요. 엄마가 등나무 옆에 숨어 있던 모습도, 중문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모습도 나는 다 봤는데 말이죠.
내가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손소독을 하고 도움반 교실로 걸어갈 때도 엄마는 건물 밖 유리문을 통해 내가 교실로 들어가는지 살펴 보고 있었어요. 중간에 친구를 만나 도움반이 아닌 1학년 3반 교실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 도움반 선생님이 나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셨던 모양이에요. 그날 이후부터 엄마는 내가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늘도 엄마는 내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내 손을 잡았어요. 학교로 가는 길에 우리 반 친구 우주를 만났어요.
“서희야, 안녕?”
우주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손을 잡아다가 자기 손을 잡게 했어요. 나는 강아지가 아닌데 나를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손을 강제로 가져다가 자기 손을 잡게 해요. 누구도 나에게 손을 잡지 않겠냐고 물어보지 않아요.
나는 우주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몸을 웅크렸어요. 우주는 다시 내 손을 끌어다가 자기 손을 잡게 해요.
“서희야, 오늘 기분이 나빠? 나랑 같이 가자.”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니요!”
내 말을 들은 엄마가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친구한테는 ‘요’ 자를 빼고, ‘아니’라고 하면 돼. ‘요’ 자는 어른한테는 붙이는 거고 친구나 언니, 오빠한테는 그냥 반말로 하면 돼.”
엄마는 내가 하는 말도 마음에 안 드나 봐요. 나는 점점 더 기분이 나빠졌어요. 엄마는 오늘 아침 나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요.
“서희는 도움반이에요.”
나는 늘 듣는 익숙한 말이지만 우리 엄마에겐 낯선 말이었나 봐요. 엄마는 상냥한 목소리로 우주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듯이 친절하게 말했어요.
“서희는 1학년 3반이야. 우주랑 같은 반이지.”
“어, 아닌데. 서희는 도움반인데.”
“음. 서희는 도움반이기도 하지만 1학년 3반이기도 해.”
우리 엄마는 친구들이 나를 “도움반”이라고 말할 때마다 “1학년 3반”으로 바꿔 말해요. 엄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도와주면서 왜 학교에서는 도움을 받는 친구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을 못마땅해하는 걸까요?
어느 날 엄마가 물었어요.
“서희야, 서희는 도움반이 좋아? 아니면 1학년 3반이 좋아?”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느낄 수가 있어요. 아마도 엄마는 내가 1학년 3반이 좋다는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도움반.”
“도움반? 왜 도움반이 좋아?”
엄마는 자신이 원하던 대답인 아니었나 봐요. 자꾸 ‘그건 아니지’라는 마음을 투명한 포장지로 싸서 나에게 건네줘요. 하지만 나는 포장하는 방법을 몰라요.
“도움반. 좋아. 재미있어.”
난 정말 도움반이 좋아요. 도움반 선생님은 나를 기다려줘요. 내가 여름방학이 다 되도록 숫자를 4까지 밖에 못쓰더라도 계속 쓸 수 있도록 도와줘요. 한글도 ‘비읍’까지 밖에 모르더라도 ‘바’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내가 스스로 실내화를 갈아 신는 것,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식탁에 앉아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까지 모두 칭찬해 주세요. 도움반 언니나 오빠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놀아줘요. 우리는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도움반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엄마는 내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대신해 주려고만 해요. 내 책가방 속 학용품에는 모두 엄마의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1학년 3반으로 지내길 기대해요. 1학년 3반 안에서는 누구도 나를 친구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나는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도움반을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요? 친구들은 나를 강아지처럼 쓰다듬고, 내가 손잡기 싫지만 내 손을 잡으려고 잡아끌어요.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따라 하라고 시켜요. 나는 강아지도 아니고, 앵무새도 아닌데 1학년 3반에 있으려면 얌전하고 조용히 따라 하는 아이로 있어야 해요.
엄마는 '남들과 똑같이' 배우고, '남들과 똑같이' 일반 교실에서 지내는 1학년 3반 20번 '조서희'를 기대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도움반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