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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미 Jul 29. 2022

내 이름은 조서희

5. 나는 꿀벌이에요.

 오늘도 너무 더워요. 덥지만 치료실은 가야 해요. 엄마는 더워서 학교에서는 여름 방학을 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치료실은 이렇게 숨 막히게 더워도 방학이 없대요. 들어가는 채소는 똑같은데 까만색이면 짜장, 노란색이면 카레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에어컨을 틀어 시원했던 집에서 나와 치료실에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살짝 불고 있었어요.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엄마가 만들어주는 양산 그늘을 따라 걷다가 길가에서 흔들거리는 강아지풀을 발견했어요.

 언제부터인지 나는 길을 걷다가 강아지풀을 보면 꼭 하나를 뜯어서 한 손에 들고 걸어요. 강아지풀을 볼 때면 어린이집에 갈 때 엄마가 강아지풀을 뜯어 내 손등을 간질러 주던 기억이 나요.


 "서희야, 이건 강아지풀이야. 손 줘 봐. 간질간질하지?"

 "응, 간질간질해."


 엄마는 내 손바닥과 손등에 강아지풀을 문질러 줬어요.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너무 더워서 힘이 없나 봐요. 강아지풀을 뜯어주려 하지 않았어요. 내가 혼자서 강아지풀을 뜯으려고 고개를 숙이자 초록색 강아지풀 사이로  아주 작은 나비가 날고 있는 게 보였어요. 나비는 강아지풀 사이로 피어 있는 민들레꽃에 앉았어요. 나비는 목이 말랐는지 꽃 위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아마 꽃 속에 있는 꿀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을 거예요.

 그 옆에는 민들레 씨앗이 동그랗게 피어 있었어요. 난 송보송한 민들레 씨앗을 뜯어 마스크를 내리고 "후~"하고 불었어요. 하지만 내가 만드는 바람은 민들레 씨앗을 날릴 수 없었어요. 배에 힘을 주고 숨을 들이마신 뒤 양볼이 터질 듯이 바람을 불어도 민들레 씨앗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서희야~ 손으로 살짝 뜯어서 훌훌 뿌려봐.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여행을 갈 거야~"

 "이렇게 뜯어?"


 나는 씨앗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 뜯어서 머리 위로 날렸어요.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갔지요. 어디로 가나 눈으로 따라가 보니 바로 앞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꽃들이 보였어요. 그 꽃을 향해 걸어가며 내가 말했어요.

 

 "엄마, 저기 꽃이야~ 예쁘지?"

 "응, 예쁘네~ 서희는 꽃이 좋아?"

 "응, 꽃 좋아. 꽃은 나비랑 벌이 좋아해."


 엄마는 잠깐 생각에 잠겼어요. 나에게 들려줄 말을 고르는 것 같았어요.


 "우리 서희도 꽃을 좋아하니까 예쁜 나비가 아닐까?"

 "아니. 난 꿀벌."

 "왜?"

 

 엄마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꿀꺽꿀꺽 꿀을 먹어."

 "서희는 꿀이 좋아?"

 "응. 맛있어."

 "서희 꿀 먹어봤어? "


 나는 내가 꿀을 먹어봤는지 잘 모르지만 어젯밤 엄마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엄마는 늦은 밤 배가 고프면 미숫가루를 타 먹는데, 거기에 할머니가 주신 꿀을 타 거든요. 나는 어제 엄마가 식탁에 내려놓은 벌꿀 상자에 그려진 그림을 봤어요. 그림에는 벌집 안에 꿀벌들이 가득했지요.


 "우와, 서희야 이거 진짜 맛있다!"

 "엄마, 맛있어? 여기 상자 그림. 꿀벌이야. 엄마, 꿀벌이 마안~아. "


 나는 양팔을 벌려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응, 정말 꿀벌이 많다 서희야."

 "엄마, 꿀 맛있어?"

 "응, 맛있지. 엄마가 이렇게 맛있는 꿀을 먹을 수 있는 건 다 저 꿀벌들 덕분이야. 꿀벌들이 열심히 꿀을 모아줘서 엄마가 꽃에서 꿀을 따지 않아도 이렇게 편하게 먹을 수 있어."

 "꿀벌이 꽃에서 꿀을 쭉쭉 모아 와?"

 "응. 꿀벌이 꽃에서 꿀을 쭉쭉 모아 와."


 나는 꿀벌에게 고마웠어요. 우리 엄마가 맛있는 꿀을 먹을 수 있게 열심히 일하는 꿀벌이 좋았어요. 엄마는 꿀벌 덕분에 행복해요. 그래서 나는 예쁜 나비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꿀벌이에요. 나도 꿀벌처럼 꽃을 좋아하고,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니까요.


 치료실에서는 선생님과 문어 다리도 오리고, 빨래집게 놀이도 하고, 내 이름 쓰기도 했어요. 선생님과 놀이가 끝나고 엄마가 상담을 하러 들어왔어요.

 

 "어머니, 오늘은 서희가 오랜만에 이름 쓰기를 했더니 헷갈렸나 봐요."

 "어, 어제도 서희랑 이름 쓰기 했는데 집에서는 잘했었거든요."

 "아, 그래요? 그러면 오늘은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늘 서희는 문어 다리도 잘 오리고, 단추 끼우기랑 빨래집게 놀이하면서 검지 손가락 쓰는 연습도 해 봤어요."


 선생님은 엄마에게 나랑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다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생님이 가끔 같은 이야기를 해도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을 보일 때도 있어요. 하지만 나도 그런 걸요. 아무리 한글 쓰기 연습을 해도 처음 쓰는 것처럼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오늘도 내 이름을 "조서희"가 아니라 "소서ㅎ"로 썼는지 잘 모르겠어요. 수백 번은 써 본 이름인데 말이에요.

 

 엄마는 상담을 마치고, 내 손을 잡고, 치료실을 나왔어요.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나는 너무 더워서 어딘가에 가고 싶었어요. 엄마에게 어디로 가자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몰랐어요.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마트 앞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하나씩 뜯거나 허리를 굽히고 발을 질질 끌었지요.


 "서희야, 아이스크림 사줄까?"

 "아니!"

 "그럼 음료수 사줄까?"

 "아니!"

 "그럼 마트에 갈래?"

 "아니!"

 "그럼 빨리 집으로 가자. 너무 더워."


 나는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가 먹고 싶었던 건 아닌데, 어쩐지 집으로 그냥 가기에는 마음이 계속 불편했어요.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양산을 쓰고, 다시 길을 걸었어요. 얼마쯤 걷다가 엄마가 물었어요.


 "서희야, 편의점 갈까?"

 "네! 좋아요!"


 나는 "편의점"이란 말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곧바로 엄마 손을 놓고 총총 뛰어서 숫자 7이 크게 쓰여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내 눈에 딱 들어온 과자를 향해 걸어갔지요.


 "서희 그거 먹을 거야? 어젯밤에도 아빠가 편의점에서 사줘서 먹었잖아."

 "응. 이거 먹을 거야."


 나는 이 과자 이름은 모르지만 감자로 만든 과자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과자에는 내가 좋아하는 꿀벌이 그려져 있어서 이 과자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가 어젯밤 "진짜 맛있다"라고 한 그 맛을 알 것도 같아요. 꿀벌이 그려진 상자 속에 든 벌꿀이 맛있는 것처럼 꿀벌이 그려진 이 봉지 안에 든 과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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