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날밤이 되면 나는 외로워져요. 오빠들도 자고, 엄마랑 아빠도 다 자는데 나만 혼자서만 눈을 뜨고 있어야 하니까요.
침대에 누워 눈을 뜨고 있으면 온 세상이 깜깜해요. 나는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 또 문질러요. 그리고 몇 번 깜박여 봐요.아무리 눈을 문질러 위를 올려다봐도 작은 별빛이나 환하게 빛나는 달빛은 없어요.
나는 손가락을 빨면서 가만히 눈을 감아요. 늘 이렇게 하면 잠이 오거든요. 손가락을 빨면 빨수록나는 방에서 나가 그림책도 보고 싶고, 스티커 붙이기도 하고 싶어 져요. 하지마는, 엄마가 불을 다 꺼놓았기 때문에 거실에는 혼자 나갈 수가 없어요. 거실에 나가면 방안과 똑같이 깜깜한 곳인데 잠자는 침대의 엄마도 없이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 하는 수 없이 엄마 옆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자꾸 눈물이 나와요.
"서희야, 어서 자야지."
"엄마... 흐흐흑...."
나는 엄마 옆에 누워 있지마는 엄마는 자고, 나는 깨어 있다는 생각에 슬퍼져요. 엄마는 꿈나라에, 나는 우리 집에 따로 있는 것 같아 눈물이 나요.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엄마는 나를 두고 떠난 것만 같아요.
"서희야, 늦었어. 빨리 자야지."
"엄마. 엄마. 흐흐흑. 흑..."
내가 계속 울면엄마는 내 등을 토닥이다가 다시 잠이 들어요. 나는 엄마 손을 끌어다가 내 배에 얹고 쓱쓱 문질러요. 그러면 엄마는 다시 잠에서 깨어 내 배를 문질렀다가, 머리를 쓸어줬다가, 등을 긁어 주지요.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나는 점점 더 크게 울어요. 엄마는 아빠가 자야 한다며 나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요. 거실 바닥에 엄마랑 누워 있으면 이상하게 잠이 솔솔 오는데, 눈을 감고 잠에 빠질 때쯤 엄마는 나를 안고 다시 방으로 가요. 나는 아직 잠이 들지 못했는데 엄마 때문에 잠이 달아나면 이전보다 더 짜증이 나요.우리 엄마는 왜 조금 더 기다려주지 않는 걸까요?
내가 서서히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엄마는 나를 안고몇 번인가 거실로 왔다 갔다 했어요.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가 낮잠을 잔 날이면 밤에 꼭 산책을 가자고 해요. 놀이터에 나가 그네도 태워주고, 우리 동네 여기저기를 계속 걸어 다녀요.
오늘도 낮잠을 잤어요. 밤이 되자 엄마는 포도가 잘 익고 있는지 보러 가자고 했어요. 아파트 후문에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방학 전에는 모두 초록색이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밤에 가서 보니 보라색으로 변한 포도들도 있었어요.
"엄마, 포도 좀 봐!"
"보라색이다! 할아버지 댁 포도들도 잘 익어가고 있겠네."
"할아버지 포도? 할아버지 포도도 보라색이래?"
"응~ 할아버지도 포도 키우시잖아. 지금쯤 이것처럼 맛있게 익어갈 거야."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포도랑 복숭아를 키우고 있다는 걸 알아요. 택배로 사과랑 배랑 블루베리도 보내주시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 브로콜리, 콜라비랑 그보다 더 많은 채소를 나를 위해 기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오빠들은 할아버지가 보내주시는 모든 것을 먹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보내주시는 모든 것을 먹지요. 그중에서도 나는 할아버지가 보내주시는 옥수수가 제일 좋아요.
"엄마, 옥수수 보러 가자!"
"그래, 옥수수 보러 가자."
나는 엄마 손을 잡고 포도송이를 지나 옥수수와 고구마가 심어진 밭으로 갔어요.
나는 벌써 할아버지 옥수수를 먹었는데, 이곳에는 여전히 키가 큰 옥수수나무가 수염 난 옥수수를 업고 있었어요.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펼친 옥수수나무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춤을 춰요. 우리 엄마가 나를 업고 그랬던 것처럼 옥수수나무도 등에 업은 옥수수를 재우는 것 같아요. 나는 이 모습이 정말 재미있어요
"엄마, 저기 옥수수다!"
"그러게. 여기는 아직 옥수수를 안 땄나 보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더 아래로 내려가 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우와! 서희야, 벌레들이 운다. 잘 들어 봐. 혹시 개구리도 울고 있나?"
"벌레가 울어?"
"응, 벌레가 크게 울지? 소리 들리지?"
"응. 소리가 들려. 엄마한테 가야 해."
"응?"
"벌레가 울어. 빨리빨리 엄마한테 가야 해."
"뭐라고? 서희는 엄마랑 같이 있잖아."
"벌레가 울어. 벌레가 빨리 엄마한테 가야 해."
"아, 벌레가 울면 엄마한테 가야 해?"
"응."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아 주며 말했어요.
"벌레가 빨리 엄마한테 가서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어요. 엄마가 나를 안아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훅~", "흑", "후~" 하고 내는 소리는 나에게 뭔가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만 알지요. 엄마는 나를 더 세게 꼭 안아주었어요. 나는 오늘 밤 잠이 잘 올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