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과 밥을 먹어요. 엄마가 밥 먹으라고 네 번이나 말했지만 식탁에 앉은 건 나뿐이었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다섯 번째 밥 먹으라는 말을 했을 때, 오빠들은 번개처럼 달려와 숟가락을 집었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만큼 손바닥 힘도 세지고 있다는 걸 오빠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지요.
“잘 먹겠습니다!”
큰오빠가 말했어요. 큰오빠는 밥 먹기 전에 꼭 이런 말을 해요.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오빠는 먹기 전에는 잘 먹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밥을 잘 먹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오빠가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싫어요. 엄마가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했는데, 오빠는 매번 거짓말을 하니까요.
나는 엄마가 주는 반찬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요. 매운맛은 매운 대로, 짠맛은 짠 대로 맛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오빠들은 또 맛이 없다고 거짓말을 해요. 분명히 김치도 김치맛이 있고, 고기도 고기맛이 있고, 파나 마늘도 다 맛이 있는데 왜 오빠들은 맛이 없다고 하는 걸까요?
밥을 먹을 때마다 맛없다고 하는 오빠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 건 나에게 참 힘든 일이에요. 분명 맛을 갖고 있는 반찬인데도 오빠들은 엄마가 만든 반찬이 무슨 맛을 갖고 있는지 먹어 보려 하지 않아요.
오빠들 밥그릇에는 밥이 줄어들지 않고,
그 모습을 본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 가슴은 자꾸만 콩닥거려요.
힘이 세진 엄마의 손바닥이 오빠의 등짝에서 언제 또 무서운 소리를 낼지 알 수 없으니까요.
개학을 한 후 학교에 다니면서 오빠들과 간식 먹는 시간이 달라졌어요.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엄마는 나랑 약속을 했어요. 구름빵선생님*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간식으로 매운국수*를 해 주기로 말이에요.
오빠들은 매운국수를 싫어하지마는 나는 매운국수를 좋아해요. 빨간 국수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고, 한 입 먹으면 머리가 찡해져서 얼음물을 한 컵 마신 후에야 다시 먹을 용기가 생기는 그런 국수요.
내가 매운국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유튜브에 나오는 언니 때문이에요. 엄마가 가끔 보여 주는 유튜브에는 입술이 빨갛고 얼굴은 하얀 언니가 많은 음식을 혼자 먹고 있어요. 어느 날 그 언니가 커다란 접시에 놓인 매운국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후 나도 그 언니처럼 매운국수가 먹고 싶었어요. 그 언니는 우리 오빠처럼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라는 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정말 맛있게, 깨끗하게, 즐겁게 먹어요. 엄마는 그 언니가 먹는 국수는 너무 매운 거라서 나는 먹을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나는 그 언니가 먹는 빨간 국수가 좋아요. 국수를 입에 넣은 후 후루룩~ 당겨 입속으로 넣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걸 보여 주거든요.
오후에 치료실에서 구름빵 선생님이 주신 허니버터칩 과자를 먹으며 집으로 오면서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집에 가서 매운국수 해 주세요!”
“그럼. 국수 해 줘야지. 그런데 서희는 매운국수가 왜 좋아?”
“음... 소리가 좋아.”
“소리? 무슨 소리?”
“국수가 입으로 후루룩 올라가는 소리.”
“국수를 먹는 소리? 그게 왜?”
“맛있어. 국수 먹는 소리가 맛있어서.”
유튜브에 나오는 언니가 매운국수를 먹는 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바로 매운국수야’ 라는 소리로 들려요. 허니버터칩을 먹을 때 나는 소리보다 빨간 국수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더 기분이 좋아져요.
엄마는 내가 한 말을 또 한참을 생각해요.
“소리가 맛있다고?”
사실 음식에도 소리가 있다는 건 엄마가 가르쳐 준 거예요. 내가 먹기 싫은 반찬이 있을 때, 엄마는 내 귀에 속삭이듯 반찬들이 내는 소리를 들려줬어요.
식탁 위에 있는 반찬들은 가지나물도 소리가 있고, 배추김치도 소리가 있었어요. 반찬들이 내는 소리는 그 반찬을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어요. 소리가 나는 반찬을 먹다 보면 음식마다 맛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맛은 밥을 자꾸자꾸 먹도록 만들지요.
엄마는 약속대로 집에 와서 매운국수를 만들어 줬어요. 끓는 물에 딱딱하고 가느다란 국수를 넣자 국수는 힘을 잃고 흐물흐물해졌어요. 찬물에 헹군 하얀 국수는 힘이 없어 보였어요. 엄마가 고추장 양념을 넣고 참기름과 참깨를 넣어 조물조물 무치자 빨갛고 힘세 보이는 매운국수가 완성되었지요.
매운국수를 입에 넣으면 머리가 ‘찡~’ 해지고 입에서 ‘훅훅’ 바람이 나와요. 오늘도 국수를 입에 넣자 나도 모르게 “후후”소리를 내고, 손바닥으로 입안을 부채질했어요.
“엄마, 얼음물!”
엄마는 서둘러 내 물컵에 얼음을 넣어주었어요. 나는 매운국수가 내는 맛있는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유튜브에 나오는 언니처럼은 먹지 못했어요. 그래도 엄마가 매운국수를 먹으며 들려주는 초록색 오이 소리도 재미있고, 매운국수를 먹은 후 입속에서 나오는 ‘훅훅’ 소리도 재미있었어요.
우리 오빠들도 음식에는 모두 맛이 있고, 음식이 내는 소리가 재미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일도 없고, 엄마 손바닥 힘이 자꾸자꾸 세지는 일도 없고, 큰오빠가 “잘 먹겠습니다”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다음 구름빵 선생님 수업 시간에도 허니버터칩을 먹게 될까요? 내가 좋아하는 과자의 맛있는 소리가 수업 시간을 더 재미있게 해 준다는 걸 선생님도 꼭 알아야 할 텐데요.
* 구름빵 선생님: 서희의 인지치료 선생님. 인지치료를 시작한 첫 날 선생님께서 구름빵 캐릭터를 이용하신 후 서희는 인지치료 선생님을 구름빵 선생님으로 부릅니다.
* 매운국수: 비빔국수. 고추장 양념으로 무친 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