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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미 Jul 27. 2022

내 이름은 조서희

4. 오빠가 울었어요.

 여름 방학식이 있는 날이에요.

 음... 솔직히 나는 여름 방학이 뭔지 잘 모르지만 엄마가 아침부터 학교에 가면서 뭔가 좋은 느낌이 드는 날이라는 걸 알려줬어요.      


 “서희야, 오늘은 일찍 데리러 갈게. 오늘부터 여름 방학이니까.”

 “여름 방학?”

 “응. 여름 방학. 오늘만 학교 가면 당분간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공부하라는 뜻이야. 여름은 너무 더우니까.”

 “집에서 공부해?”

 “응. 집에서 공부해.”

 “한글 공부?”

 “응, 한글 공부.”

 “엄마, 서희도 한글 공부해서 핸드폰 살 거야.”

 “그래. 우리 서희가 한글 알게 되면 핸드폰 사 줄게.”     


 나는 많은 친구들이 갖고 있는 핸드폰이 없어요. 엄마는 내가 숫자를 알게 되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 수 있게 되면, 또 한글을 알아서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되면 핸드폰을 사 주기로 했지요. 그렇지만 나는 1학년 여름 방학이 될 때까지 한글도, 숫자도 다 깨치지 못했어요.


 내가 매일 기다리는 것은 아빠의 퇴근 시간이에요. 아빠는 종종 집에 오지 않아요. 종종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집에 오거나, 종종 일찍 오거나, 어쩌다 쉬는 날에는 성당에 봉사를 하러 가야 한대요. 그래서 아주 가끔씩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아빠의 핸드폰을 내가 사용할 수 있어요.

 나는 한글과 숫자를 몰라서 내 핸드폰을 가질 수 없지만, 아빠의 핸드폰을 사용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아요. "스노우"라는 하늘색 네모를 누르면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열려요. 나는 동물이 되었다가, 꽃이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음식이 되었다가, 예쁜 공주도 될 수 있어요. 눈으로 보는 그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세계에서 즐길 수 있도록 흥겨운 노래를 들려줘요. 이렇게 신비로운 세상이 그렇게 작은 핸드폰 안에 있다는 게 신기해요. 나도 한글을 빨리 깨쳐서 "스노우"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방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너무 더웠어요. 이런 날에는 나를 시원한 얼음이 가득한 나라로 데려다주는 화면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지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말했어요.


 “어, 서희다.”


 평소에는 누군가 내 이름을 말하면 엄마는 꼭 뒤를 돌아봐요. 그런데 오늘은 엄마도 너무 더운지 내 손을 더 꼭 잡고 더 빨리 걷기 시작했어요.


 “어, 서희다.”


 이번에도 누군가 내 이름을 말했어요. 이번에는 엄마가 크게 숨을 몰아쉬더니 뒤를 돌아보았어요.


 “안녕! 서희 친구구나.”

 “네.

 같은 반이니?”

 “네.”


 그 친구가 나랑 같은 반이라고 엄마한테 말했어요. 곧이어 그 친구 옆에 있던 친구 엄마에게 우리 엄마가 인사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 때쯤 그 친구는 우리 엄마가 불편해 하는 말을 꺼냈어요.


 “엄마, 서희는 도움반이야. 도움반이라 핸드폰도 없어.”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뒤를 돌아보며 친구에게 말했어요.


 “친구 이름은 뭐야?”

 “유진이요.”

 “유진이구나. 유진이는 어디 가?”


 유진이에게 물었는데, 유진이 엄마가 말했어요.


 “스타필드에 가요. 너무 더워서.”

 “이제 거기 가시면 저녁에나 나오셔야겠어요. 너무 더우니까 해 떨어지면. 하하하하”


 엄마는 이번에는 마음이 괜찮았나 봐요. 그런데 나는 조금 기분이 안 좋았어요. 친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었거든요. 내가 핸드폰이 없는 이유는 도움반이어서가 아니라 아직 한글을 몰라서인데 말이에요. 도움반 오빠들 중에는 핸드폰이 있는 오빠들도 있어요. 도움반에서 공부하면 모두 핸드폰이 없는 건 아닌데, 친구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유진이는 언니나 오빠가 있나요?”

 “아니요. 유진이는 외동이에요.”

 “우와! 유진아, 좋겠다. 엄마, 아빠 사랑 듬뿍 받아서.”

 “하하하하.”


 유진이 엄마는 잠깐 멈칫하다가 소리 내어 웃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나 봐요.


 “혼자인데도 그러면 셋은 어떻겠어요. 유진아, 서희는 오빠가 둘이나 있어. 그래서 유진이가 받는 사랑을 세 명이 나눠야 해. 유진이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얼마나 행복한지 알까?”


 곧이어  우리 집 앞에 도착했어요. 스타필드는 우리 집에서 더 걸어가야 나와요. 나는 유진이와 인사하고, 엄마는 유진이 엄마와 인사를 한 후 헤어졌어요.

 우리 집에는 엄마가 아침마다 10번씩 깨워야 일어나는 오빠들이 있어요. 내가 태어난 이후로 오빠들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대요. 그래서 오빠들은 나보다 곤충들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나 때문에 오빠들이 늘 많이 속상하니까요.

 엄마는 나만 데리고 멀리 병원도 가고, 치료실도 가고, 승마장도 가는데 오빠들은 모두 오빠들이 알아서 학원에도 가고 학교 준비물도 챙겨야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오빠들은 가끔씩 엄마 모르게 내 머리에 꿀밤을 줘요.   


 유진이는 엄마랑 아빠가 늘 같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선물도 많이 받겠지만 나는 꿀밤을 주는 오빠들이 있어서 좋을 때도 있어요. 엄마가 나를 두고 외출해야 할 때 오빠들은 나를 번갈아 가며 놀아줘요. 선생님 놀이도 해 주고, 병원 놀이도 해 줘요. 그때마다 자꾸 시계를 보며 몇 분이 남았는지 체크를 하지만 오빠들이 없었다면 나는 혼자서 그림책만 봐야 했을 거예요. 또, 오빠들은 내가 밖에서 놀고 있을 때 내가 다치지는 않을까 지켜봐 줘요. 그네도 밀어주고, 씽씽이도 같이  줘요. 나는 오빠들이 나에게 엄마나 아빠처럼 “귀엽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오빠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느낄 수 있어요.


 밖이 어두워졌는데도 집안은 너무 더워서 엄마는 결국 에어컨을 틀었어요.

 "엄마는 왜 이제서야 에어컨을 틀어요?"

 "서희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나는 아까부터 더웠는데, 엄마 와~ 진짜!!"


 작은오빠는 엄마가 에어컨을 튼 게 마음에 안 드나 봐요. 나는 엄마랑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후에 엄마 침대에 누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큰오빠가 엄마한테 달려오더니,


 “엄마, 안아주세요.”

 “그래, 이리 와. 우리 아들.”

 “엄마, 서희에게 너무 고마워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천국의 색연필>*이란 책을 읽었거든요. 그 책을 읽으면서 서희 생각이 났어요. 서희가 이렇게 건강해져서 너무 고마워요. 서희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어요.”

 “엄마도 그 책 읽고 서희 생각을 했었는데. 서희가 우리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지?”  


 엄마는 오빠를 안고 등을 두드려 줬어요. 나는 그 책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요. 아직 엄마가 읽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빠가 그 책을 읽고 내 생각을 했다니, 그리고 눈물이 났다니 분명 감동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오빠가 나를 안아주며


“서희야, 고마워.”


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빠가 엄마한테 안기며 나한테 고맙다고 말하니까 그건 좀 이상해요.

 엄마는 유진이에게 나에게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유진이보다 덜 사랑받고, 덜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건 엄마가 잘 모르고 하는 말 같아요.  

 나는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엄마랑 아빠 말고도 오빠 두 명의 사랑을 더 받잖아요. 내가 오빠들의 생활에 불편함을 주긴 하지만 나 때문에 책을 읽으며 눈물도 흘릴 수 있는 거니까 오빠들도 분명 더 많은 사랑을 느끼면서 사는 게 아닐까요?


 이번 여름 방학에는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오빠가 읽고 나를 생각하며 눈물이 났다는 그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아빠 핸드폰이 아니라 내 핸드폰으로 "스노우" 세계로 갈 수 있겠죠? 그때는 큰오빠랑 작은오빠도 초대할 거예요.





    

* <천국의 색연필> : 토요시마 카스미 시, 그림

코야마 미네코 글, 마이클 그레니엣 그림, 남도현 옮김, 2007년 파랑새 출판

열 살 때 뇌종양이 발병한 토요시마 카스미. 카스미네 학교의 가정 선생님이 열두 색 색연필과 공책을 선물했고, 그때부터 카스미는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토요시마 카스미는 2003년 열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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