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물놀이를 했어요. 우리 가족이 다니는 성당에서 여름신앙캠프가 열렸거든요. 우리 집 거실보다 더 큰 풀장도 있었고, 통통 튀는 미끄럼틀도 있었어요. 오빠들은 율동도 하고 퀴즈도 풀고 물총놀이도 하며 재미있었대요.
나는 사람들이 모여서 큰 소리로 웃고 이야기하는 게 싫었어요. 다들 교육관에 모여 성경 속 인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선생님들은 나에게 “서희야, 이리 와서 같이 하자.”라고 말씀하시지만 난 사람들이 벗어놓은 많은 신발들을 보면서 같은 모양을 맞추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나는 수많은 신발들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그려진 내 샌들을 찾아 신고 슬그머니 교육관을 빠져나왔어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엄마는 내 옆에 다가와 있었어요. 엘사 공주가 올라프 머리 위에 만들어준 구름처럼 내 머리 위에는 우리 엄마가 CCTV 카메라를 만들어 놓은 건 아닐까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엄마는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걸까요?
“서희야, 어디 가? 같이 놀아야지. 친구들도 모여 있던데?”
“싫어. 안 가.”
“왜 싫어?”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엄마 손을 뿌리치고 달아났어요. 교육관 지하로 내려가 주차장 마당에 새로 설치했다는 방방 안으로 들어갔지요.
내 키가 세 살 아이처럼 작던 시절에도 나는 이곳에서 방방을 탔어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몸이 위로 붕붕 올라가는 이게 뭐라고. 어른들은 내가 작다는 이유로 이런 것도 못 탈 거라 생각하나 봐요. 나는 그런 어른들의 눈빛을 느낄 때면 어른이면서 냉면 속 오이를 무서워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서희는 여기서 노는 게 좋아?”
“응. 신나.”
“그래, 그럼. 여기서 엄마랑 놀자. 엄마가 사진 찍어 줄게!”
웬일인지 엄마는 내가 혼자 나와서 친구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데도 사진을 찍어 주겠대요.
나는 캠프 첫째 날에도, 둘째 날에도 혼자서 방방을 탔어요. 둘째 날에는 우리 집 거실보다 더 큰 풀장에 들어갔었는데 물이 너무 차가웠어요. 풀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내 허리보다 높은 풀장을 나가려고 할 때마다 나는 자꾸 미끄러졌어요. 그때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없었다면 나는 오빠처럼 입술이 파래지고 턱이 달그락달그락 연주를 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 후로는 오빠들이 놀고 있는 풀장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대신 혼자서 방방에 들어가 신나게 점프를 했어요. 한참을 뛰다 보면 몸이 따뜻해지거든요.
엄마는 내가 신나게 놀만 하면 자꾸 간식을 먹으라고 부르고, 또 좀 놀만 하면 자꾸 밥을 먹으라고 불러요. 딱 재미있는 시간에 방해를 하는 건 싫었지만 엄마가 나를 위해 음식을 챙겨준다는 건 참 좋았어요. 친구들 중에는 엄마가 오지 않은 친구도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은 혼자서도 밥을 잘 먹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가 불편한지 주변 어른들한테 잘 말할 수 있어서 엄마가 옆에 없어도 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옆에서 챙겨주는 건 좋은데 그만큼 듣기 싫은 말도 계속 들어야 해요.
엄마가 내 옆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서희야, 쉬 하러 가자.”예요. 엄마가 그 말을 많이 한다는 건 엄마한테 그 말이 중요하다는 뜻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에겐 그 말이 중요해도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나는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쉬를 안 하고 싶어 져요.
지난 금요일에는 승마장에 말을 타러 갔어요. 엄마는 내가 하교를 한 후에 나를 엄마 차 뒷좌석에 안전벨트로 꽁꽁 묶은 후 한 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했어요. 승마장에 가면 여러 마리의 말들이 같은 곳을 뱅글뱅글 돌고 있어요.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곳에 앉아 말들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어요.
“서희야, 우리 쉬하고 오자. 말 타기 전에 쉬 하자.”
“아니야. 안 해도 돼.”
“정말 안 해도 돼? 그럼 말 타고나서 쉬 하자. 꼭!”
결국 쉬는 안 한 채로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나도 말들이 돌던 곳을 뱅글뱅글 돌았어요. 무거운 헬멧을 쓰고, 두꺼운 조끼를 입고 말 위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뱅글뱅글 돌다 보면 자꾸만 눈이 감기고 몸이 나른해져요. 내가 살짝 눈을 감는다 싶으면 선생님은 얇고 긴 막대기를 탁탁 치며 “서희, 일어서!”, “앉아!”를 외쳐요.
그렇게 졸린 상태로 한 시간 동안 말을 타고나서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거든요.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는데, 누가 있는지 문이 잠겨 있는 거예요. 엄마는 내가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도 모르고 자꾸 거품 비누로 손부터 씻으래요. 차가운 물에 손을 씻다 보니 졸음도 달아나고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사라졌어요. 나는 시원한 엄마 차에 앉아 마이쮸를 먹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서희야, 쉬 하고 차 탈까?”
“아니야. 쉬 안 마려워요.”
“집에서도 쉬 안 하고 왔잖아. 얼른 쉬 하고 차 타자. 집에 가는 중간에 화장실은 없어.”
“아니야. 괜찮아요.”
“어쩔 수 없지.”
엄마는 나를 다시 차 뒷좌석에 안전벨트로 꽁꽁 묶은 후 얼음물을 주고, 마이쮸를 주더니 다시 운전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정말 쉬가 안 마려웠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나도 모르게 내 몸에서 쉬가 나오고 있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쉬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요.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화를 낼 것 같았지만 용기 내서 조용히 엄마를 불렀어요.
“엄마, 쉬 했어요.”
“응? 뭐라고?”
“서희, 쉬 했어요.”
“바지에 쉬를 했다고?”
“네.”
엄마는 핸들을 잡고 앞만 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어요.
“서희야, 여기서는 차를 세울 수 없어. 12분만 참아줄래? 근처 마트에 가서 옷도 갈아입고 쉬 하고 가자.”
“응. 12분만?”
“응.”
“12분만 기다려?”
“응, 12분만 기다려. 할 수 있겠어?”
“네!”
나는 엄마가 “그래서 엄마가 쉬 하고 가자고 했지!”라고 말하지 않아서 참 고마웠어요. 만약 엄마가 그 말을 했다면 저절로 나오는 오줌 말고, 참고 있던 오줌이 막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 이후로 엄마는 여름신앙캠프를 하는 내내 나에게 물었어요.
“서희야, 쉬 안 하고 싶어? 서희가 참으면 쉬가 나오게 되고, 쉬가 나오면 친구들이 놀려요. 서희는 오줌 싸는 친구라고. 그러면 서희가 속상할지도 몰라.”
아, 정말 지겨워요. 나도 바지에 쉬를 안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쉬는 나한테 “지금 나간다!”하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쉬는 엄마처럼 친절하지 않아요. 나한테 말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나오는 거라고요.
그런데...
쉬는...
내가 신나게 방방을 타고 있을 때...
나한테 말도 없이...
또... 나오고 말았어요.
엄마는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옷을 갈아입혀 주었어요. 친구들은 내 옷이 왜 바뀌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아요. 엄마는 내가 바지에 쉬를 하면 친구들이 바로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들은 엄마만큼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걸 엄마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여름신앙캠프 내내 물놀이를 하고 방방을 탔더니 어제저녁은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밥도 먹지 않고 아침까지 계속 잠을 잤어요. 아침이 되자 엄마는 학교에 가야 한다며 나를 깨웠어요. 식탁에 앉아 있는데 엄마가 김에 싼 밥을 참기름 간장에 찍어 입속에 넣어주었어요. 엄마는 동시에 내 머리를 묶어 주었지요.
나는 입만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학교 갈 준비가 끝나 있어요. 엄마는 학교에 가기 전에는 반드시 쉬를 해야 한다며 나를 욕실로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나를 변기에 앉혀 주었지요.
“서희야, 쉬 해야지?”
“......”
“서희, 쉬 안 나와?”
“......”
“서희야, 빨리 쉬 하고 학교에 가야지!”
“쉬가 안 나와요.”
“아침에 일어나면 쉬 하는 거야. 빨리 쉬 하고 일어나.”
“......”
한참이 지났어요. 정말 쉬는 나오지 않았어요. 아직 잠에서 덜 깬 쉬는 나오고 싶지 않은데, 우리 엄마가 자꾸 나오라고 하니까 얼마나 더 자고 싶겠어요?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고 계속 나오라고 하니까 쉬도 화가 난 것 같아요. 나는 화난 쉬를 달래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엉덩이도 벅벅 긁어봤지요.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변기에서 ‘쪼르르르’ 물소리가 나오지 않자 오빠를 부르며 욕실에서 나갔어요. 오빠들도 학교에 가야 하니까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엄마는 오빠들이 옷은 입었는지, 양말은 신었는지 확인하고 밤새 까치들이 지어 놓은 새집도 정리하라고 퐁퐁 퐁퐁 말풍선을 쏟아냈어요.
바로 그때.
“쪼르르르”
변기 속으로 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나는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쉬를 빙글 뱅글 미끄럼을 태워 내려보내고, 거품 비누로 손을 씻고, 욕실 밖으로 나왔지요.
“쉬 했어?”
“응, 쉬 했어.”
“그럼 빨리 학교에 가자.”
오늘은 내 쉬가 빨리 나오지 않아서 기다리느라 학교에 늦어나 봐요.
“늦었어. 빨리 가야 해. 지금 가면 녹색 엄마들 다 철수란 말이야.”
엄마가 말하자 작은 오빠가 말했어요.
“안철수.”
“뭐라고?”
“안철수라고요. 철수 안 한다고요. 지금 가도 안철수!”
엄마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혼자서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런데 정말 학교 앞 사거리에는 녹색 조끼를 입은 엄마들이 노란 깃발을 들고 있었어요.
“거 봐요. 안철수라니까요!”
작은 오빠는 큰 오빠와 “안철수”, “백신”, “대통령”, “국민의 힘”, “양보”, “대통령이 되기 위한 큰 그림” 등등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교문으로 들어갔어요.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우리 교실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어요.
“서희야, 오늘 엄마가 어디까지 데려다줄까?”
나는 오늘은 꼭, 엄마한테 마음속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가만히 멈춰 서서 엄마 손을 놓고 말했어요.
“엄마, 기분이 안 좋아.”
“왜? 우리 서희 기분이 안 좋아?”
“쉬 안 나오는데. 엄마가 자꾸 쉬하라고 해서 기분이 안 좋아.”
엄마는 갑자기 나를 꼭 안아주었어요.
“그랬구나. 우리 서희 쉬 안 나오는데 엄마가 자꾸 쉬하라고 해서 기분 나빴구나. 엄마가 미안해.”
나는 엄마의 볼록한 배에 얼굴을 묻고 엄마를 더 꼭 안았어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준 게 너무 고마웠어요.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엄마가 나를 이해해 준다는 게 기뻤어요. 그런데 엄마가 뒤이어 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