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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Sep 10. 2022

주님이 내게 주신 꽃다발

#17

2021년 5월 3일 목요일. 오늘로 모든 표준치료*가 끝이 났다. 2019년 12월 17일, 첫 번째 암 수술을 시작으로 약 1년 5개월 정도가 걸린 셈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언제쯤 끝이 날까, 끝이 오기는 할까 싶었는데 정말로 끝이 왔다.


치료받는 동안 심심하기도 하고 정보도 얻고 위로도 받을 겸 유방암 인터넷 카페에 종종 들락거렸다. 그 카페에는 표준치료가 끝나 남편이 꽃다발을 사줬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인증사진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곤 했다. ‘아, 그동안 치료하느라 고생했다는 의미로 남편이 꽃다발을 선물해주기도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없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겼다. 그냥 표준치료를 다 끝낸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본 것뿐이었다.


방사선 치료 마지막 날, 병원 가는 길에 꽃집이 보였다. 괜히 꽃다발을 보았다. 대수롭지 않은 줄 알았는데 부러웠나 보다. 나도 꽃다발이 받고 싶었다. 셀프 선물이나 해볼까 하다가 돈이 아까워서 말았다. 꽃다발은 비싸다. 휴직 중이라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나에게 꽃다발은 너무 비싸다.


‘됐어! 어차피 곧 시들고 말 거야.’


모든 치료를 끝내고 부모님과 저녁 식사 후 하루를 마무리하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성당에서 아는 신자 분이 정말 예쁜 꽃다발과 호두 파이를 선물로 가져오신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딱 내가 원하던 그런 꽃다발이었다.


‘아! 이것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꽃다발이 틀림없었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나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내 기도를 듣고 계셨던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주님을 체험하면서 고통이 은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더 큰 소득은 나의 이 고통 자체는 하찮은 것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지금 이 고행을 하는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전 세계적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1분에 7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보다 많은 1분마다 11명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보다 그동안 기아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다. 그들은 배고프고 불안정하며 춥고 공포에 떨며 외롭게 산다.


처음 암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는 나만 불쌍하고, 이 세상에서 나만 제일 힘들고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내가 결코 불쌍하거나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실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신의 은총으로 내가 풍요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분명 감사한 것이다. 그러니 감사한 일이 생길수록 나누어야 한다. 그동안의 무지와 무관심을 반성하며,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내가 받은 감사를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한다. 내가 고통을 견뎌낼수록 다른 사람들을 더 공감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내게 올 고통을 기꺼이 견뎌낼 것이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자신을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



* 표준치료는 암의 3대 치료 방법으로 수술, 항암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를 말한다.

** 옥스팜(Oxfam)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굶주려 죽는 인구 6배 증가〉 2021: https://www.oxfam.or.kr/press_0709_hunger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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