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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May 01. 2022

유방암이 재발, 전이되다

#2

❚ 나쁜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더라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2020년 6월, 암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동네 유방 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수술이 아주 잘 되었고, 더 이상 암은 없다는 확인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 수술했을 때 겨드랑이 쪽은 전이 없었던 것 확실해요?”


그런데 의사가 말없이 한참을 보더니 물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른쪽 겨드랑이 림프 쪽에 암으로 의심되는 덩어리가 2개 보이니 당장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결과는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였다.

아니 왜? 남들은 한 번도 걸리기 어렵다는 암이 두 번씩이나 찾아온 것이다. 처음 수술했을 때는 1년쯤 지나면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 있을 줄 알았다. 예전처럼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시며 놀 수 있을 줄 알았다.


희망 같은 건 품지 말아야 했던 걸까. 처음 암 선고를 받았던 그날, 흐릿해졌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나버렸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수술로 암을 떼어냈으니 얼른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 암 환자였다.


❚ 승진 누락


그 무렵, 나는 회사의 승진 누락 소식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매년 3월은 정기 승진심사 시즌이다. 나는 병가 중이었지만 승진심사 요건을 충족하여 승진심사 대상자였다. 내가 승진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뜻밖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입사 동기들과 심지어 후배들이 승진하던 그날, 나는 승진 누락이라는 아주 불쾌한 사실을 맞이해야 했다. 늘 승진에 연연했고, 회사에서 출세하는 것이 목표였던 나였기에 이 소식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승진에서 나만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손끝, 발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뇌가 조이는 듯한 두통이 왔다. 너무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잠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보다는 차라리 멎은 것처럼 고요했다.


내가 뻔뻔해서 나의 승진을 믿어 의심치 않은 게 아니다. 우리 회사는 공공기관으로 아무래도 사기업에서의 승진과는 달랐다. 실적으로 치열하게 승진하는 사기업과 달리 특별한 문제가 없고 승진 연한을 채우면 정원에 맞게 '비교적' 순서대로 승진이 된다. 적어도 회사 설립 이후 선배들의 경우는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직급별 정원과 현원이 불균형하게 되면서 승진이 어렵게 되었다. 우리 입사 동기들은 2018년도에 승진 대상이 되었지만 아무도 승진하지 못했다. 그다음 해에도 못했다. 회사 측에서도 승진 적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번에는 승진 정원을 이례적으로 많이 준비했다. 그러니 2020년에는 정말로 승진할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는 나를 제외한 우리 동기 모두와 우리와 함께 밀려났었던 1년 아래 후배 모두, 심지어 2~3년 아래 후배 중 몇몇까지 한꺼번에 승진시켜주었다. 나만 빼고!


3년이나 승진을 기다려왔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승진 누락이라는 불편한 사실은 지난날의 내 생활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렇게 한동안 억울함, 분노, 쪽팔림, 자책, 후회, 그래도 또 억울함의 반복이었고,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게 되었다.

회사 안에서 입사 동기뿐 아니라 후배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초조한 생각이 밀려왔고, 암으로 휴직까지 하게 된 마당에 나의 승진은 언제 하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나중에 복직했을 때 제법 차이가 나는 후배들보다도 뒤처져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절망적이었다.

이런 감정들이 수시로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그렇게 괴로운 생활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끔찍한 시간에 갇혀있었다. 암 환자는 스트레스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데,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 파혼


“엄마가 이 결혼하면 나랑 연을 끊겠다고 하셔. 정말 미안해.”


이 와중에 남자친구의 파혼 통보까지. 암에 걸린 것도 모자라 승진마저 안 돼서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다. 사람 앞일은 누구도 모르는 거라지만 이럴 수가 있나. 정말 해도 너무했다.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2020년 5월 30일 11시 새신부가 되어 있었을 거다. 프러포즈 반지는 또 얼마나 예쁘게? 모든 여자의 로망인 민트색 회사의 다이아몬드 반지. 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될 것 같았다.

2019년 12월 6일은 나의 웨딩드레스 투어 날이었다. 그런데 드레스를 입어보기는커녕 드레스 투어 일주일 전에 무려 암 선고를 받았다.


입장 바꿔서 만약 네가 암에 걸렸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겠지? 과연 그러셨을까? 그래도 내가 제일 힘들 때 옆에 있어 줘야 하는 게 네가 아닌가? 나도 네가 아프다고 하면 널 떠났을까? 아니, 아픈 내가 민폐니까 나 스스로 물러났어야 하는 걸 눈치도 없이 붙잡고 있었구나.

요즘 유방암 1기는 다 산다는데. 죽을병도 아닌데. 끝까지 옆을 지키다 치료가 다 끝나면 결국엔 결혼하는 커플도 있다던데. 그래, 나에 대한 네 마음이 거기까지인 거겠지. 원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치사한 새끼.


일상으로 돌아오기는커녕 더 멀어졌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닌데, 조금 살아났다고 암 환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며 건강한 사람들 세상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욕심내기 시작했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수술만 잘되면 바라는 게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다 내려놓겠다고 했으면서. 막상 수술하고 회복되니 그 이상의 것들을 또 욕심내고 있었다. 승진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구나.


그래서 암이 재발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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