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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Apr 30. 2022

서른셋, 유방암 환자가 되다

#1

❚ 수상한 몽우리의 발견     


2019년 가을 무렵이었다. 오른쪽 가슴에서 완두콩만 한 몽우리가 만져졌다. 이게 뭐지? 조금 수상하긴 했지만, 10대나 20대 여자들도 가슴에 물혹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 달쯤 지났을까? 물혹이라면 스스로 없어져야 하는데, 그 수상한 몽우리가 자꾸만 커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단단했다. 무언가 귀찮은 것이 생긴 것 같아 동네 유방 외과에 가서 검사해보기로 했다. 대충 초음파 검사나 하고 물혹이니까 걱정말라는 얘기나 들으러 간 거였는데, 갑자기 의사가 조직검사를 해봐야겠다며 간호사에게 준비를 시키는 거였다.


“마취하고 칼로 살짝 몇 군데 째서 조직을 채취할 거예요. 조금 아플 겁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상태였고, 그냥 마취 주사가 무섭고 조직검사도 무서웠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뭔가 모르게 착잡한 느낌. 속으로 '이거 과잉 진료 아니야? 보나 마나 물혹인데 왜 조직검사까지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검사를 받았다. 진짜 더럽게 아팠다.

병원에서는 일주일 뒤에 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했고, 나는 고생한 내 가슴을 위해 특별히 대중교통이 아닌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와서 보니 가슴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2019년 11월 29일 금요일. 나는 숫자에 참 약한데 이 날짜는 절대 잊지 못한다. 이날은 내가 암 선고를 받은 날이다. 조직검사 후 일주일 뒤, 당연히 물혹일 테니까 나는 보호자도 없이 혼자 병원에 갔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거 참. 양성종양이면 내가 그냥 떼버리려고 했는데 어떡하지?”


난 이때까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그 의사는 ‘암’이라든지 ‘악성종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어디 병원 알아놨어요? 잘 모르면 내가 고대 병원 연결해주고.”


병원을 알아놨을 리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놀라서 내가 놀랐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고,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진료실 밖에서 초음파, CD, 조직검사 결과지 등을 챙기고 수납을 하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 아직 실감 안 나는데 왜 눈물이 나지? 이거 무슨 상황이지? 사고회로가 엉망이 되어 고장이 났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유방암이라고? 난 고작 33세고, 암 가족력도 없다.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 서른셋유방암 환자가 되다


일단 엄마한테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여보세요?”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OO아 왜 그래?”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엄마는 나에게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채신 것 같았다.


“엄마 나 암이래.”


유방암, 너무 생소해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너무 모르니까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와 닿지 않았나 보다. 암 선고를 받은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했다.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던 업무를 다 정리하고 인수인계한 뒤 병가를 냈다.


나는 국립암센터에서 치료하기로 했다. 2019년 12월 19일 수술 날짜가 잡혔다.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바쁘게 돌아가는 수술실 앞에 내가 있었다. 비현실적이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혀서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부모님은 나를 보며 연신 파이팅을 외쳐주셨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저 멍했다. 다만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애써 웃고 있던 엄마의 슬픈 눈만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술 결과 나는 호르몬성 유방암 1기로 최종 진단을 받았다.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니 주변 사람들은 유방암은 치료가 가능한 암이니까 별것 아니라며 마음 독하게 먹으면 금방 완치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왠지 암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 검색을 하며 관련 자료를 다 뒤져보던 버릇대로 유방암에 대한 각종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생존율’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유방암 1기의 5년 생존율은 96.6%, 2기는 91.8%, 3기는 75.8%, 4기는 34.0%*란다. 생존율? 생존율이라니? 내 인생에서 ‘생존율’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는 날이 오다니.

5년 생존율이라는 것은 암 치료에는 최소 5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유방암 1기는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순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5년 동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쨌든 암은 완치가 어려운 난치병이다. 이제 고작 33년을 살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병과 죽음에서 자유로운 인생은 끝이 난 셈이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지만 진짜 이럴 수도 있구나.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이야기,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 그래서 관심 없던 이야기가 내 인생에서 시작되었다. 내 찬란한 인생에서는 이런 불행이 등장하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였는데.

 

나는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되어 ‘죽음’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잘 나가던 내 인생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인생에서 커다란 고난과 역경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 오세정 《유방암백서》 p.12, 한국유방암학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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