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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May 02. 2022

무서운 항암 치료를 받다

#3

서둘러 다시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 계획을 세웠다.


“항암 8번 할 거예요.”


가차 없이 쏟아지는 말은 매정했다. 각오를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미 항암을 할 것으로 예상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이 되지 않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항암 치료는 3주에 한 번씩 진행되기에 8번을 다 마치려면 6개월이 걸리고, 항암 결과에 따라 수술이 진행될 거라 했다. 수술 후에는 방사선 치료를 또 30번이나 받아야 한다. 항암 치료하면 그렇게 힘들다던데. 머리카락도 다 빠진다던데. 수술을 또 해야 한다고? 더 이상 내 몸에 칼 대기 싫은데. 방사선을 그렇게 많이 하면 피부가 다 벗겨진다던데. 너무 하기 싫었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항암 치료는 정말 소름 끼쳤다. 혈관 주사로 진행되는데, 혈관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약의 생생한 느낌이란. 다 맞고 나면 손과 팔이 마치 냉장고에 넣었다 뺀 것처럼 엄청 차가웠다. 그리고 주사 맞는 동안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주사 맞기 전 구토방지제를 먹고 안정제도 맞고 시작하지만 소용이 없다. 보통 3~4시간 정도 맞는데, 그 시간 동안 멀미하는 배 안에 갇힌 느낌이다. 이건 차멀미가 아니라 뱃멀미 수준이다.


약이 정말 독하긴 한가 보다. 한번 주사를 맞은 혈관은 새카맣게 타버려서 두 번 다시 쓸 수 없었다. 매번 새로운 혈관을 찾아서 여기저기 바늘을 꽂아봐야 했다. 바늘도 엄청 커서 엄청 엄청 아프다. 항암 치료가 끝난 지 1년이 지났을 때에도 왼쪽 손등과 팔에는 타버린 혈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가 치료받은 항암제는 ‘세포독성 항암제’다. 정상세포에 비해 빠른 속도로 분열하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 보니 골수세포, 모근세포, 위점막세포 등과 같이 본래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세포도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 백혈구 수 감소, 탈모, 구토, 변비, 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을 겪었다. 손발톱도 까맣게 변색되었다.


구토와 어지럼증이 심할 때는 먹자마자 다 토하느라 하루에 3번씩 토를 했고, 너무 어지러워서 앉아있을 수조차 없었다. 3일을 내리 누워만 있던 적도 있었다. 멀미 증세는 일주일 정도 계속되었다.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 등을 한 대 섞어 마신 뒤 숙취가 왔을 때와 비슷하다. 그 숙취가 깨지 않고 일주일 내내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체중은 순식간에 45kg까지 빠졌다. 살면서 한평생 다이어트를 했지만 이런 몸무게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도 이 꿈의 몸무게는 달성해본 적이 없다. 걸을 때 살이 너무 빠져서 다리가 덜덜 떨렸다. 15년 지기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 응급실에 입원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호중구 감소'였다. 첫 항암 주사를 맞고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오후 5시 즈음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9월 중순이었는데 너무 추웠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엄마가 걱정스럽게 나를 살피더니 오한 증세 같다고 하셨다. 순간 열이 38도 이상 올라가면 위험하니까 꼭 응급실에 오라는 의사의 말이 스쳤다. 서둘러 열을 재보니 39.5도였다. 허둥지둥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자리가 없을뿐더러 코로나 검사로 대기만 4시간이 넘게 걸릴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종합병원에도 모두 알아봤지만, 응급실 자리가 없거나 타 병원 암 환자는 받기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내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은 집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이대로 4시간 넘게 대기하느니 다니던 병원으로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끝내고 바로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저녁 6시가 넘어 출발해 밤 9시경 병원에 도착했다. 쉬지 않고 달려준 아빠 덕분이었다. 그런데 의료진이 부족한 탓인지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한참을 대기했다. 너무 춥고 열이 나서 머리는 어질어질한데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밤 10시가 넘어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입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열이 난 원인은 호중구 감소 때문이었다. 호중구는 백혈구 중 하나인데, 면역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포이다. 호중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면역체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항암제로 인해 호중구가 감소하면 외부 감염에 취약해질 수 있어서 이 호중구 수치를 기준으로 항암 주사를 맞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한다. 아무나 항암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피검사 결과 호중구 수치가 무려 110이 나왔다. 보통 호중구 정상 수치는 1,500~7,000이고, 항암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최소 수치는 1,000이다. 그런데 나는 110이라니. 이 와중에 열이 났다는 것은 감염의 신호일 수 있고, 이 정도 수치면 작은 감염에도 치명적일 수 있어 격리병실에 입원하여 치료받게 된다.

일단 응급실에서 호중구 수치를 높이는 주사를 맞았는데도 다음날 수치가 더 떨어져서 70이 나왔다. 1인 격리병실에 입원하여 엄청나게 센 항생제를 맞고 호중구 수치 높이는 주사를 계속 맞았다. 병원식도 전부 멸균된 것으로만 나왔다. 세균 때문에 김치도 먹으면 안 되었다.


웃픈 순간도 있었다. 밥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걷는데 나를 발견한 간호사가 헐레벌떡 쫓아와서 밖은 위험하다며 도로 병실로 집어넣었다. 또 강한 항생제 주사를 맞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해대는 바람에 추가로 나오는 알약 항생제는 먹지 않고 감춰놓았다. 새벽에 혈압을 재러 온 간호사한테 알약을 들키는 바람에 혼이 났고 그 자리에서 강제로 항생제를 먹어야 했다.

어린아이 취급이라니.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간호사님들의 살뜰한 보살핌과 많은 관심을 받으며 2박 3일 만에 호중구 수치가 정상으로 올라와 퇴원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응급실 사건이 이 정도로 마무리돼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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