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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May 08. 2022

나쁜 게 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야

#4

❚ 안녕, 내 소중한 머리카락


나는 새카맣고 부드럽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가졌다. 눈썹은 송승헌처럼 짙고 속눈썹마저 길고 풍성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속눈썹 연장 시술을 받으면 보통은 한 시간 내외로 끝나는데, 나의 경우 두 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속눈썹과 이별을 경험해야만 했다. 다양한 항암 부작용 중 무엇보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탈모였다. 30대에 암 환자가 된 것도 서러운데 대머리라니.


2차 항암 후 차츰차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1차 항암 후에 빠지기 시작한다는데 나는 머리숱이 많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늦게 빠지긴 했다. 이게 뭐라고 나름대로 위로가 되더라.

머리카락을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게 무서워서 일주일씩 안 감고 버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나올 때마다 눈물범벅인 내 얼굴을 보시는 부모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주먹만한 머리카락 뭉치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오곤 했다.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져버려 골룸같이 변한 내 모습은 참 초라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평소에 모자를 잘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써보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이참에 귀여운 모자도 이것저것 구매했다. 덕분에 옷 스타일도 같이 바뀌었다. 귀엽고 캐주얼한 스타일로.

긴 머리 가발은 금액도 너무 비싸고 나중에 서로 엉켜서 관리가 어렵다길래 쇼트커트 스타일의 가발을 샀다. 생애 첫 쇼트커트였다. 헤어스타일을 짧게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원래 스타일보다 더 어려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머리카락이 자라면 커트하고 다녀야겠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 두상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 꼭 메추리알 같았다. 아침마다 동그랗고 예쁜 두상을 거울로 비춰보며 감상하곤 했다. 그동안 머리빨의 혜택을 받는 줄 알았는데 삭발한 내 모습도 멋있었다. 내 동생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언니니까 그 정도로 버티는 거지. 만약에 나였으면 진짜 못 봐줬을걸?”


또 머리 감고 말리는 일과에서 해방되었다. 스님들처럼 세수하면서 머리까지 같이 씻어버리면 된다. 예전에는 고데기를 하고 스타일링하느라 30분은 족히 잡아먹었는데, 모자를 툭 눌러쓰거나 가발을 쓰기만 하면 바로 외출 준비 끝!


삭발 스타일이라니 살면서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두 번 다시 겪고 싶진 않지만, 인생에 다시없을 경험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 내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행복해져요


항암 주사실에는 항상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렇게나 항암 치료받는 환자들이 많다고? 접수하고 한 시간쯤은 기본으로 기다린다. 항암 치료도 대기를 해야 한다니.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짜증이 나는 일이다.

넓고 쾌적한 침대에서 여유 있게 치료받기는커녕 자리는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고, 뒤로 젖혀지는 의자 같은 것에 기대듯이 앉아서 주사를 맞아야 했다. 물론 침대 자리도 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 차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는 총 8번 중에 딱 한 번 침대에서 맞았다.


그날은 눈이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운 좋게도 창이 아주 넓게 난 곳에 위치한 침대 자리가 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린애처럼 “앗싸!”를 외치며 침대에 누웠다. 세상에 항암 주사를 맞는데 ‘앗싸’라니. 그날따라 눈도 너무 예쁘게 내렸다.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감상하며 항암 주사를 맞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아! 내가 항암 치료를 하면서 웃을 수도 있구나!’


항암 치료가 있는 날은 늘 힘들고 불평불만 가득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힘들긴 했지만 더 이상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나쁜 와중에도 얼마든지 기쁜 일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좋게 보였다. 이 세상을 내가 바꿀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은 내가 바꿀 수 있다. 내 마음이 바뀌면 내 세상이 바뀌는 거였다.


암 진단 이후 내 삶은 치료와 건강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무조건 밤 10시 전에 잠들어야 하고 수면시간은 최소 8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하루에 1시간 정도 걸어야 하고, 마늘, 양파, 부추, 브로콜리는 매일매일 먹어야 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하루하루였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항암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기특한 나인데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비록 투병 기간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처음으로 생긴 공식적인 휴식 기간이기도 하다. 내가 앞으로 언제 이렇게 쉬어 보겠나.

이렇게 생각하니 싫게만 느껴졌던 투병 기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 기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지 즐거운 계획을 세웠다. 요리를 배우고 발레학원에 다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건강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다.’ 가끔 어른들한테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저게 무슨 말인가 싶고, 머리로는 대충 알 거 같은데 가슴으로는 확 와닿지 않던 말.

암에 걸렸어도 내 인생은 계속된다. 앞으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계속해서 찾아오겠지.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꼭 나쁜 게 아닐 수 있다. 그러니 좋은 일이 생겼어도 항상 겸손하고, 나쁜 일이 생겼어도 너무 절망하지는 말아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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