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억이 끊긴 날

2. 사라진 시간 속의 나

by 박하루

기억이 없다는 건, 그 순간을 온전히 ‘잃는’ 것이다.

잠에서 깼을 때처럼 몽롱한 상태도 아니고,

잠시 깜빡 졸았을 때처럼 흐릿한 잔상이 남는 것도 아니다.

뇌전증 발작이 휩쓸고 간 자리는, 그냥 통째로 날아가 버린 시간의 구멍만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고,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있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

내가 무슨 행동을 했고, 누구를 놀라게 했는지.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그 장면들이 내게만 결핍된 채 남겨졌다.


나는 ‘나 없이 존재했던 시간’ 앞에 종종 멈춰 서야 했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 나의 흔적을 들어야 했고, 그 증언들은 때로 무섭고, 때로 낯설었다.

“눈이 돌아갔어.”

“입에 거품이 있었어.”

“다리를 엄청 떨었어.”

나의 부재를 증명하는 타인의 기억은 내가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도, 자꾸만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사라졌던 그 짧은 몇 분은 내게 평생 이어질 그림자를 남겼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누군가를 놀라게 하진 않았을까.

혹시 이상한 소리를 지르진 않았을까.

질문은 많지만, 대답은 할 수 없다.

그건 ‘나’이지만,

내가 아닌 시간 속의 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그 시간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예고 없이 나를 지워버리는 그 몇 분이 언제, 어디서 다시 시작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경계해야 했고, 그 경계심은 나를 점점 더 작고 조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래도 지금은 괜찮잖아“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그 시간의 ‘부재’가 고스란히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는 그 몇 분의 공백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갈 무렵, 나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따라오지 않는 순간들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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