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몸과 정신이 어긋날 때 드는 두려움
뇌전증 진단을 받고 난 뒤에도, 내 일상은 겉보기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학교를 다녔고, 사람을 만나고, 가끔은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충돌들이 계속 일어났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따라오지 않는 순간들.
나는 그 어긋남 앞에서 자주 멍해졌다.
어느 날은, 밤새 과제를 하고 겨우 잠든 채 몇 시간도 채 못 자고 수업에 나갔다가 버스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왔다.
눈앞이 핑 돌고, 식은땀이 흐르는데 그 순간 내가 다시 쓰러지는 건 아닐까, 발작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감각만 내 안에서 도돌이표처럼 울렸다.
또 다른 날은, 컴퓨터로 리포트를 작성하다가 손가락이 내 뜻과 다르게 움찔거렸다. 마우스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이 툭, 튀어 나갔다.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이상한’ 감각이었다. 정신은 깨어 있는데, 몸이 혼자 움직이는 기분.
그 순간 나는 이것이 ‘소발작’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누가 보기엔 그냥 실수처럼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경고처럼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드는 두려움은 아주 조용하고, 서늘했다.
‘혹시 또 발작이 오려는 걸까?’
‘내가 지금 이상한 상태인 걸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닐까?’
말은 멀쩡히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 괜찮지 않아’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 내 안을 들여다봐 주었으면,
누가 내 상태를 먼저 알아봐 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건 나만 아는 증상이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나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더 외로웠고, 점점 더 스스로를 숨기게 되었다.
“나 요즘 좀 이상해”라는 말을 꺼내기까지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왜 그래?’라고 반응할까 봐.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은 그 이질감은
정신적으로도 큰 피로를 안겼다.
‘나는 멀쩡한 걸까? 아니면 무언가 또 시작되고 있는 걸까?’
의심하고, 해석하고, 불안해지는 이 반복적인 질문들은 나를 점점 더 안으로 가라앉히는 무게가 되었다.
그 무게 속에서 내가 배운 건 하나였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것’과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은 다르다는 것.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매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