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억이 끊긴 날

4. 그날 이후, 내 일상에 생긴 균열들

by 박하루

진단을 받고 돌아온 나는, 예전의 나와는 달라져 있었다. 몸이 다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삶의 리듬이 무너졌고, 일상의 질감도 달라졌다.

무언가를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가 걷던 길을 다시 살펴야 했다.


가장 먼저 변한 건 ‘시간’이었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자기 전 약을 챙겨 먹는 일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늦잠도, 깜빡하는 일도 내겐 사치였다.

하루에 한 번 실수하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불안’이었다.

어디서든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내 모든 움직임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혼자 외출할 때면 “혹시 쓰러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상상 속의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고,

대중교통을 탈 때도, 사람 많은 장소에 있을 때도,

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여기서 쓰러지면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친구들과의 약속, 야외활동, 잠깐의 외출조차

이젠 철저한 계획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는 알코올과 니코틴은

나에게 사치품도 아닌 기피 물품들이 되었다.

술자리에 초대받아도 쉽게 응하지 못했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모임엔 온갖 핑계를 대며 빠지게 되었다.

혹시 알약을 깜빡할까 봐, 술이 몸에 무리를 줄까 봐,

나조차도 나를 못 믿겠는 순간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상을 마주하는 내 마음엔

‘미안함’이 한 겹씩 쌓였다.

걱정하게 만들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늘 불안했고, 늘 조심스러웠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내 감정을 미리 숨기고, 내 상태를 먼저 점검했다.

내가 발작을 일으키는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늘 조용히, 묵묵히 내 일상을 조율해야 했다.


‘조심해서 다녀’,

‘피곤하지 않게 해’,

‘밥 꼭 챙겨 먹고’

이 평범한 말들이 내게는 경고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내 몸은 이제 아무렇지 않지 않고,

내 일상도 더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하는 생활을

나는 유독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가능해졌다.

일상의 작은 균열이 무너지면,

그 끝에는 언제나 발작이라는 큰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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