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음식은 맛있다. 맛있는 것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힘들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 먹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한다. 공복의 감정은 마치 컴컴한 심해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랄까. 우울하기 그지없다. 적당히 배가 고플 때 적당한 음식으로 적절히 마음을 달래주는 건 어떨까.
좋아하는 음식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 정도이다. 싫어하는 취향은 확고하다. 바다 냄새가 나면서 물컹거리는 질감. 딱 들어맞는 것이 생굴과 생미역이다. 바다 근처에서 자랐지만 비릿한 그 바다 내음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못 먹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까지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는 게 좋은 걸까. 희생하는 굴과 미역에게 굳이 싫어하는 마음을 내비치며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여럿이 먹을 때는 당당히 못 먹는 걸 이야기하고, 도전한답시고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이 갈 때 진심을 담아 음식을 먹는 건 단순하지만 소박한 인생철학이다. 기분이 좋으면 맛있는 걸 먹는다. 우울하면 우울함을 풀어주는 먹을거리를 찾는다. 미각에 집중된 혀를 굴리다 보면 어느새 먹는 행위 그 자체에만 몰입한다. 맛있는 걸 먹는다는 건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은 절대로 먹지 않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은 고기다. 소고기, 돼지고기 구워서 먹는 생고기는 다 좋다. 지구를 위해 채식주의가 되고 싶지만, 고기는 끊을 수 없는 비극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기는 혼자서도 먹으러 갈 수 있다. 혼자서 먹는 고기의 맛을 아는가. 일생을 혼자 고기를 구워 먹은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9살, 혼자 인도네시아로 일을 하러 훌쩍 떠났었다. 순전히 돈이 목적인 외국인 노동자였다. 해외에서의 외로움은 온전히 나 혼자의 몫이었다.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몸이 아프다는 건 사치였다. 건강을 위한 것도 미용을 위한 것도 아닌 그저 먹고살기 위해 잘 챙겨 먹어야 했다. 고시원 같은 숙소 코스(cos)에서는 요리 자체를 할 수 없기에 식당을 이용했다.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지자 어느새 용기가 생겼다. 혼자 먹는 고기가 뭐 어때서. 식당으로 당당히 들어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고기를 불에 올렸다.
처음으로 혼자 먹던 고기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불판의 열기는 외로움에 타오르던 향수를 집어삼켰다. 그때의 처음은 용기의 시작이었다. 혼자 먹는 밥, 대충 빵으로 한 끼를 때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기를 좋아하는데 고기를 먹고 힘내고 싶은데, 혼자라는 이유로 포기한다면 그건 삶에 대한 포기가 아닐까. 고기가 그렇게 중요하냐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 곰곰 생각해 보면 항상 인생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삶을 움직이며 이끈다. 혼자 먹는 고기는 삶에 대한 자그마한 용기의 시작이자, 끈끈한 열정의 시작이다. 그날 이후, 힘이 생겼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당당히 맞서할 말을 했다. 혼자 먹은 고기 한 점이 삶을 희망차게 이끌어주었다.
혼자 고기를 굽던 힘으로 결혼을 했다.
임신 중에는 배 속의 아이와 임산부의 영양분을 위해 홀로 고기를 구웠다. 아이들이 여럿 있다 보니, 혼자 먹는 밥의 의미가 남다르다. 가족들이 있으니 혼자 고기를 먹으러 가는 용기 따위는 이제 내세우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눈 뜨자마자 아이들이 부르는 ‘엄마’ 소리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벌써 저녁 식사 시간이다. 아이들과 우르르 외식을 나서면 새끼 입에 먹이를 주느라 부모는 정신이 없다. 아이들을 먹인 후에 그제야 한입 먹을라치면 자기 배 부르다고 빨리 나가자 성화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느낄 새도 없는 시간이다. 맛의 음미 따윈 없어진 지 오래다. 아이들이 없는 고요한 시간에 혼자서 고기를 우아하게 구워 먹는 호사를 누릴 자격 충분하지 않은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은 다르지만 혼자 고기를 굽는 시간은 소중하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먹는 고기의 맛을 느낄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