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고시원에서 살아남기
절실하다. 창문 있는 방
내 몸길이에 딱 맞는 침대에 누워있다. 팔을 벌려 대자로 눕고 싶지만 침대 밖으로 널브러지는 팔 한 짝은 더 이상 내 팔이 아닐 것 같다. 옆으로 누우려 몸을 돌리기라도 하면 차디찬 타일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는 솟아오를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 분명 이곳은 30도를 훌쩍 넘는 적도 지방의 더운 섬나라, 그런데 춥다. 그저 양팔을 몸통에 꼭 붙여 나를 위로하는 팔로 꼿꼿하게 천장만 쳐다본다.
나름 장점도 있다. 피죤을 100통쯤 쏟아부은 향기로움을 감수할 수 있다면 핑크색 티셔츠가 하얀색이 되어 돌아오지만 빨래도 해준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24시간 틀어놓고 입 돌아갈 때까지 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세제를 쓰는지는 알수는 없지만 방 청소도 해준다. 방이 코딱지 만해서 한손으로 쓱하면 청소가 끝나긴 하겠지만.
인도네시아 고시원 cos(꼬스), 창문 하나 없는 감옥 같은 2평 방에 혼자 누워있다. 왜 이곳에 누워있을까란 생각은 애초부터 소용이 없다.
돈이 아까웠을 것이다. 밀린 월급도 안 주려고 기를 쓰는 판에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고 계약을 해야 하는 이 나라 아파트 렌트 시스템을 탓하며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다. 그냥 솔직하게 너같이 말도 안 듣는 직원한테 숙소 제공까지 해주긴 싫다고 할 것이지.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뜻일까. 돌아간다고 하면 더 쌍욕을 해대겠지. 밀린 월급에 대한 이야기도 빙빙 둘러 내동댕이 치는 데, 도대체가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져있는 꼴이 참 우습다. 인도네시아 사장한테 뭔 꿍꿍이를 벌여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난 그저 내 밥벌이가 하고 싶단 말이다.
이쯤 되면 미쳐버리든, 돌아버리든 둘 중 하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 결정되는 삶은 자괴감이 든다. 창문 하나 없는 상자 속에 갇힌 내 자신이 초라하다. 숨 쉴 구멍 하나는 뚫어주고 싶다.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나를 가둬둘 수는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이 삶을 바꿔줄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돈 없는 처량한 외국인 노동자는 비싼 월세 1년 치를 한꺼번에 미리 내는 아파트는 당연히 포기다.
다른 사람과 쉐어? 여자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결국 다시 cos(꼬스). 그래도 이 닭장 큐브는 절대 안 되겠다. 절실했다. 창문 있는 방. 다른 꼬스를 찾아 헤매었다. 지금 있는 방만 아니면 괜찮다고 주문을 외우며 열심히 집을 찾아 헤매었다. 집 없는 서러움을 이 국 만 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이제라도 한국으로 갈까라는 나약함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한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라야 한다. 아파트에서 고시원으로 옮긴것도 억울한데, 창문 있는 고시원에 살아는 봐야겠다.
고르고 골라서 창문 있는 방을 드디어 찾았다. 욕실엔 샤워를 마음껏 해도 수도꼭지에 몸이 걸리지 않았다. 침대는 더블, 이제는 대자로 맘껏 뒹굴거리며 잘 수 있다. 조그마한 화장대 겸 책상에서는 그동안 미뤄뒀던 일기도 몇 글자 끄적여본다. 아침에 해가 뜨면 눈이 부시지만 이 눈부심조차 감사하다.
아파트에서 꼬스로 올때는 정말 미친듯이 화가나고 서러웠는데, 창문 하나 생겼다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람 참,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이제 시작이다. 하나를 바꿨으니, 또 하나를 해결할 의지가 생겼다. 조금씩 바꾸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당당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
사장은 창문 없던 닭장 값 1 juta(우리나라 돈 12만 원?)를 줬다.
+a는 창문을 원한 사람이 지불했다.
일단 욕은 잠깐만 접어두기로 한다. 창문 있는 방은 소중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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