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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Dec 21. 2023

초품아가 뭐죠?

8시 30분, 우리 집 공식 출근 시간이다. 30분이라는 말만 한번, 두 번, 세 번. 나가자는 말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한참을 목놓아 부르다 세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첫 번째 목적지는 1호의 학교이다. 손이 느리고 천성이 느긋한 아이는 항상 자신이 준비를 빨리 했는데 왜 늦냐고 투덜거리며 차에서 내린다. 사랑한다고 외치는 엄마에게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부끄러운 듯 답하며 뛰어간다.


두 번째 목적지는 학교 앞 3호의 어린이 집이다. 한 번에 걸어가면 좋으련만, 놀이터 미끄럼틀도 한번 타야 하고 머리는 자꾸 보이는데 숨바꼭질도 한번 해야 한다. 2호와 함께 어린이집 초인종을 서로 누르겠다며 전력질주를 한다. 오늘도 재미있게 놀고 오라는 엄마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신나게 어린이집으로 가버렸다.

동생을 데려다준 임무를 마친 2호와 어린이집 문 앞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 달리기 경주를 한다. 예전에는 일부러 져줬는데 요즘엔 전력질주를 해도 이길까 말까이다. 몇 미터 안 되는 거리를 달리느라 애쓴 심장과 무릎을 다독이며 차에 다시 탄다. 이제 2호만 남았다.


2호의 유치원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애틋하게 손을 잡으며 유독 엄마만 따르는 2호의 온기를 느끼면서 유치원으로 향한다. 아빠에게는 무표정한 얼굴로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한마디 인사만 나눈다. 유치원 입구까지 또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마지막 뽀뽀를 한다. 선생님은 여전히 멋쩍어하는 2호의 표정이 귀여운지 웃으면서 맞아주신다.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까지 각자 출근 하는 아침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9시 30분,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되는 나의 하루는 이제 시작이다.







몰랐다. 이렇게 아이들 보기가 힘든 곳인지. 대학가에 덩그러니 있는 우리 집 주위엔 아이들이 살지 않는다. 몇 집 남아있지 않는 이웃들도 옆집엔 할머니와 아들, 건너 집도 할머니만 사신다. 1호 학교 친구들이 가끔 집이 어디냐 물어본다. 분명 같은 학군지 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등하교를 하는 친구들은 없다. 길 하나만 건너면 oo구에서 xx구로 바뀌고, 살고 있는 곳은 oo구이지만 학교는 xx구로 다녀야 한다. 가까운 거리순으로 배정받는 초등학교이기에 할아버지 때부터 이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삼촌, 고모 일가친척들이 다니던 100년도 더 된 학교이다. 할아버지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무언가 든든해진 모양이다.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별일 없이 잘 다니면 좋은 거다.



눈 오는 날의 학교



'초품아'라는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라는 신조어. 부동산을 살 때는 초품아를 사라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아파트는 웬만해서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를.(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 있다. 부동산을 잘 모른다.) 부동산 가격은 둘째치고 편할 것 같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차들을 마주하지 않고 안전하게 학교를 간다는 건 상당히 부럽다.


엄마(친정)도 그 옛날 나를 위해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고 다. 학교 갈 때가 되자 집 걱정이 앞섰다고. 학교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이 들었단다. 우유 배달을 해서 종잣돈을 악착같이 모았고, 그 돈으로 조그만 주공 아파트를 계약했다. 그 시절은 그게 가능했다. 초품아는 아니지만 아파트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서 집 까지는 아이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걸어야 했지만 같이 가는 친구들이 언제나 많았다. 나도 그 시절의 엄마처럼 종잣돈을 모아야 할까.(어느 세월에)


oo초등학교 노란색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보며 1호가 물었다. 자기는 왜 버스를 타지 않냐고. 자기도 노란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한다. 저 학교는 추첨을 해서 뽑히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네가 뽑혀도 동생들이 뽑히지 않으면 다른 학교를 가야 한다고. 셋이 다른 학교를 보낼 수는 없다고. 아이는 노란 버스가 타고 싶었을 뿐인데, 왜 변명이 늘어놓는 것 같지. 저 학교는 등록금을 내고 다녀야 하는 학교이고, 등록금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로 설명해서 애초에 사립학교에 대한 싹을 잘라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pixabay 노란색 버스를 타고싶습니다만.


오늘도 부럽다. 집 앞에서 바로 타는 스쿨버스. 집 앞에 바로 학교가 있는 초품아. 이제 아이들에게 돈과 결부된 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설명해야 할 날들이 얼마나 많아질까.


부러운 마음, 걱정되는 마음잠시 스쳐지나 만 갔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 설명하지 뭐. 엄마처럼 자식 학교 보내겠다고 종잣돈을 모으기는커녕 빨리 시간이 흘러 혼자 학교 다니는 나이가 되라며 맘속으로 기도하는 불량 엄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년에는 2호가 학교에 간다. 1, 2호가 함께 출근을 하니 아침 전쟁 시간이 조금 단축되지 않을까. 괜히 설렌다.





대문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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