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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Dec 14. 2023

갈라진 바닥의 가시가 향하는 시선

 "엄마! 엄마! 엄마! 바닥이 까졌어!"


아이들의 호들갑스러운 외침에 놀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커다란 박스 테이프와 가위를 찾는다. 적당히 눈대중으로 길이를 가늠해 찌지지직 찌익 싹둑. 껍데기 벗겨진 까칠함을 꾹꾹 눌러 붙인다. 하얗게 살결이 드러난 상처들을 대충 테이프로 모면했다. 덕지덕지 붙은 흔적들이 군데군데 늘어난다. 지지리 궁상이다.


6년 전, 어머님과 살림을 합치던 즈음, 고민을 했다. 10년쯤 된 손때 묻기 시작한 집을 고칠까 말까. 어머님, 시누이, 신랑이 살던 집은 조용한 어른들만 살았기에 깨끗했다. 집주인은 어머님이라는 생각에 손 델 엄두를 못 낸 것도 있다. 딱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기도 했다. 인테리어에 무관심했고, 집을 꾸밀 줄도 몰랐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들 3살 남아와 뱃속의 아이까지 태어날 마당에 그게 감당이 될까 싶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도배는 해야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내친김에 오래된 화장실은 고치자고 했다. 부엌 인덕션 벽에 떨어진 타일 몇 개도 같이 붙였다. 벽지는 가장 무난한 하얀색을 골랐고, 아이들 방만 하늘색 바탕에 하얀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귀여운 벽지를 발랐다. 화장실은 연세 많은 어머님, 영유아 둘을 위해 바닥에 타일을 깔지 않고 폭신한 소재를 선택했다. 활발한 둘째가 화장실에서 떼를 쓰거나 넘어질 때면 이걸로 고르기 잘했다며 칭찬한다.(한참 유행하던 한*의 화장실 바닥재, 물 떼가 말도 못 하게 잘 낀다.) 인테리어에 무지한 나는 화장실 바탕색을 흰색과 회색으로 고르는 바람에 공중화장실 느낌으로 탈바꿈했다. 이게 최선이라며 마음을 다독였고, 만족했다.


하나였던 아이가 둘이 됐다. 장난감 자동차 바퀴와 함께 아이들은 함께 뒹굴기 시작했다. 둘은 뛰기 시작했고, 로봇도 신나게 발을 굴렸다. 자동차에 한번, 로봇에 한 번씩 찍히던 바닥이 지저분해질 때쯤, 하필 인스타그램 집스타그램이 유행이다. 하얀 벽지, 하얀색 반짝이는 바닥, 지저분한 전선이 보이지 않는 벽걸이 TV.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호텔 같은 집. 누가 봐도 깔끔한 살고 싶은 집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친구들도 하나, 둘 새집으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만 없어. 하얀 벽.



테이프와 스티커의 절묘한 조화.



부러웠다.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집으로 들어올 때 벽지만 바꿀게 아니라 싹 다 바꾸고 들어올걸.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이들은 거실에서 신나게 골을 외치며 축구를 한다. 인생이 구질구질해 보인다. 왜 나만 애가 셋이고, 왜 나만 집에서 밥을 하고 있고, 왜 내가 테이프로 까진 바닥을 고쳐야 하는가. 나만 나만 나만 왜 왜 왜 왜 왜. 끝없이 이어지는 불만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올 틈이 없다. 분명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 묘하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을 끌어들여 나를 설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초라한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건 언제나 나였다.


친구들은 해외 공연을 갈 때 항상 면세점에 들려 명품 가방을 척척 하나씩 손에 들었다. 뭔지도 모르는 촌에서 온 돈 없는 아이는 그게 뭔지를 몰랐다. 뭔지를 몰라 비교하지 않았다. 마음은 편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들 있는 명품 가방이 어떤 브랜드인지를 알고 나자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명품 살 돈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지만 보는 눈이 생긴 거다. 그 마음 아셨는지 교수님은 그러셨다. 기죽지 말라고. 명품 그런 거 없어도 된다고. 비교하는 마음만 없으면 괜찮다고. 비교를 하는 마음 하나가 괴로움을 만든다. 그때 갖지 못한 명품 가방은 작은 껌 조각 정도였다고나 할까. 비교의 대상은 무한하다. 가방 사면 차가 보이겠지. 집도 보이겠지. 끝도 없는 비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겠지.


더 이상 갈라진 마루의 나무가시들의 뾰족함이 나를 향해 나아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가끔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거라고. 나 자신만 바라보자고. 그 자체로 괜찮다고. 테이프로 적당히 수정하고 살 수 있는 인생이라 감사하다. 고쳐 쓸 수 있는 삶이 아닌가. 테이프면 어때. 까진 바닥은 우리의 추억이다. 공도 굴리고, 자동차도 타고, 미끄럼틀도 끌고 다니고, 팽이도 굴렸지. 우리 아이들과 함께 노느라 수고한 바닥에게 고맙다 해야지.


요즘 상당히 테이프 붙이는 횟수가 줄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우당탕탕 바닥 부딪히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아이들이 뛰지 않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릴 때 마룻바닥의 흔적을 기억해야지. 귀여웠던 그 모습을 기억해야지. 그리고는 웃어줘야지. 까진 마룻바닥이랑 살아도 괜찮다. 내가 괜찮다는데 뭐 어떠냐며. 가시 돋친 미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룻바닥의 갈라진 시선이 자존감까지 갈라지게 놔둘 수 없다.



남의 것과 비교하여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남의 생활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의 생활을 즐겨라.

                                                                                                     -니콜라 드 콩도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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