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가본 종로.
글쓰기 모임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수다 타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마음 맞는 여자 어른들과의 대화에 흥분 상태, 모임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기가 아쉬워 교보문고로 향했다. 책 쇼핑에 신이 나서 흥분이 도통 가라앉지를 않는다. 시내에 처음 나와 본 사람인양 두리번거리며 가라앉지 않는 흥을 자제시키며 버스를 타려 걸었다.
횡단보도에서 멍하니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누군가 다가온다.
여자 2명, 혹시 도를 아십니까?
만만하고 어리바리 한 얼굴 상인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걸어가다 보면 항상 그분들이 말을 건다.
다행히 오늘은 아니다.
중년 여성 외국인 2명.
길 물어보기 딱 좋은 관상의 소유자에게는 국내, 해외, 외국인 할 것 없이 누구나 길을 헤매다 눈 한번 마주치면 여기가 어디냐며 물어본다.
오늘도 왔구나. 잘 찾아오셨습니다.
핸드폰에 캡처된 흐릿한 녹차 티백 사진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 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만국 공통의 언어 바디랭귀지와 마트란 말만으로 이걸 찾아주시오 한다. 척하면 척이지 제가 또 바디랭귀지 전문 아닙니까. 종로 한복판에 마트는 없는 것 같고, 건너편에 편의점이 보였다.
바디랭귀지엔 바디랭귀지로 답하는 게 인지상정.
손가락으로 건너편의 간판을 가리키며 간단히 한마디 해본다.
"CU CU"
이 정도 설명이면 척하면 척, 오랜만의 실적에 어깨를 으쓱여 본다.
신호가 바뀌고 한 발짝 내딛으며 같이 가자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들도 뒤로 돌아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 CU를 가리켰는데 저 see you로 알아들으셨나요.
제가 믿음을 못 드렸나요.
제가 믿을 만한 관상이 아니더이까.
아, 씁쓸하다.
녹차는 샀을까. 걱정하는 이 마음이 더 싫다.
만만해 보여 말은 걸었지만,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인가.
100프로 신뢰를 자랑하는 글로벌 길 전문가 관상의 이력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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