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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Nov 05. 2024

계절의 선물


집에서 홍릉으로 가는 길, 하늘은 유독 높고 맑았고 선명하게 대비되는 검은 아스팔트가 유난히 짙은 날이었다. 새로 공사를 했는지 단단하게 다져진 검정 아스팔트 위에 콕콕 올려진 형광색 표시를 따라 불안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불안한 소식을 듣고 모두들 도우러 나왔는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검은 아스팔트 위로 노란 은행잎이 뒹굴거리며 중앙선을 그려놨다. 자연스럽게 줄지어 늘어진 잎사귀들을 따라 조심스래 지나갔다. 특별할 것도 평소와 다를 것도 없는 보통의 길 위에서 계절이 선사해 준 감사한 선물을 받았다.


2017년 11월 3일은 둘째의 생일이다. 딱 이 맘 때, 초겨울의 찬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선물을 받았다. 진통 간격이 점점 좁혀오자 첫째의 밤잠을 재우다 동생을 만나러 간다는 인사를 나눴다. 알겠다며 잠든 아이의 고운 모습에 안심을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은 춥지 않은 꽤 시원한 날씨에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남편과 손을 맞잡고 병원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곧 닥쳐올 출산의 아픔도 처음도 아니고 한번 해본 일이라 괜찮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때를 잘 맞춰 왔다며 바로 입원을 했고, 진통이 조금 센 것 같아서 무통 주사를 맞았고, 통증은 이내 사라졌다. 한 순 푹 자고 나니 아이는 나올 준비를 했고, 의사 선생님은 학회를 가야 하는 일정에도 새벽에 달려와주셨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맞물리며 아이를 만났다.


잘 짜인 계획표처럼 무리 없이 진행되었던 출산을 끝내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계절이 변해 있었다. 나의 생활도 변했다. 첫째는 밤사이 고열이 났고, 기관지염에 걸려 조리원에 있는 엄마를 볼 수 없었다. 고작 3살, 동생이란 존재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나 보다. 호르몬 탓인지 조리원에 있는 내내 막 태어난 어여쁜 둘째를 볼 때마다 첫째가 밟혀 눈물이 고였다. 감기가 괜찮아질 즈음 첫째가 드디어 조리원으로 면회를 왔다. 아이는 엄마보다 텔레비전을 반가워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울음이 터져 목이 쉬어라 울었다. 쉰 목소리로 우는 아이가 안쓰러워 남편도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는 배가 고파 울었고, 온 가족이 울음바다였다.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는 3학년, 1학년이 됐다. 아이들은 우는 날이 드물다. 요즘은 온 가족이 웃음으로 나뒹군다. 마치 도로에서 춤추는 노란 은행잎들처럼. 가을과 겨울이 맞물린 이 계절은 아름다운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선물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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