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다음날은 오빠야 생일이다. 생일 축하는 30년 전 비밀을 진정성 있게 고백하는 걸로 생일 선물을 대신하고자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시골 외갓집에 들어갔다. (이전 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를 보시면 깡촌 외갓집의 실태를 알 수있습니다.)
할 일 없는 초등학생은 뭘 하고 놀아야가장 잘 놀았다 소문이 날까고민하며 두리번두리번 마당을 배회했다.
그때, 이 집안 장손 오빠가 등장. 자꾸 소환되는 오빠 야한테 미안해서 다음의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아니다. 이 오빠야로 말할 것 같으면 7살 차이 잘 생긴 얼굴에 시크한 성격, 온갖 신식 문화를 즐기는 그 당시 나에게는 핫한 세계를 알려주는 적잖이 도움 되는 오빠였다. 영어도 모르는 꼬맹이에게 머라이어 캐리가 누군지 알려줬고, Ref 성대현이 제일 잘 생겼다, 나는 이성욱이 잘 생겼다 서로 우기며 돼도 안 한 걸로 유치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신문물을 선보였다. 들어는 봤나 그 유명한 mymy. 신규 핫템의 영롱한 실물을 영접했다.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돌아가는 조그마한 기계. 그뿐인가 이어폰을 꽂아 노래를 들으며 걸어 다닐 수 있다니! 나도 고등학생이 되면 저런 기계를 손안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을 우러러보듯 높아 보이는 오빠야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부러움으로 쌓아 올린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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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운수가 좋은 날인가 보다. 오빠는 나에게 귀한 물건을 내주며 잠시 맡아달라 했다. 내 손안에 허락된 잠깐의 시간, 하필이면 그때, 신호가 왔다.
바깥으로 걸어 나가 코를 잡고 숨을 참아야만 볼일을 성공할 수 있는 재래식 푸세식 화장실로 투덜대며 걸어갔다. 왜 하필 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인가. 잠시도 헤어질 수 없다며 몇 걸음 걸어가는 그 순간에도 까만 이어폰줄을 줄넘기 삼아 폴짝폴짝 투스텝을 뛰었다.
볼일을 보는 그 순간에도 너의 소중함을 놓칠 수는 없다.
그를 곱게 끌어안고 냄새의 문을 열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삐그덕 거리는 나무 발판 위에 한발, 한발 조심히 내려놓는다.
바지를 내리고 앉는 순간.
놓쳤다. mymy.
도토리묵 위에 숟가락을 한번 통 튕기듯, 마이마이 커버가 그것들의 찰랑거리는 물결에 잠시 스쳤다. 본능적으로 마치 낚시꾼 강태공이 대어를 낚아채듯 재빨리 이어폰 줄을 당겼다. 이 신이 내린 순발력이란. 오빠의 화난 모습이 불 보듯 뻔해 푹 빠졌으면 어땠을지 상상하고 싶지 조차 않다.
이제 대책을 세워보자. 진실을 말하는 순간 나는 온전치 못하겠지. 살금살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수돗가로 가서 커버를 재빠르게 벗겨냈다.
다행이다.
강태공 신공이 나를 살렸는지 기계에는 그들의 흔적이 없다. 벗겨낸 커버의 얼룩을 빛의 속도로 비벼 없앴다.코끝을 킁킁거리며 이 정도면성공이라외쳐본다.
이제 완전 범죄도 꿈꿔본다.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커버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움켜쥐었다.